대형 서점의 <취미, 레저> 코너에 가면 여행사진 부스가 따로 있고, 그 앞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출판시장의 불황 속에서도 여행사진 관련 서적은 꾸준히 효자 노릇을 해왔다는 얘기도 들린다. 또한 인터넷에서 ‘여행사진’을 검색하면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올려놓은 무수한 사진이 카페와 블로그에 올라와 있다. 나아가 여행사진 전문가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며, 장래 희망으로 여행사진가를 꿈꾸는 젊은이들도 많다. 실제로 여행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작가’들은 두터운 층의 ‘팬’을 거느리고 있어 유명 작가 못지않은 명성을 누리는 모양이다. 바야흐로 여행사진의 전성시대가 펼쳐지고 있다고 할 만하다.
왜 여행사진에 열광하는가?
이런 현상이 생겨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테지만 우선 간추려서 두 가지 조건을 언급하기로 하자. 첫째는 당연히 여행 문화의 확산이다. 1989년부터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해외여행자 수는 급격히 증가했고,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해외여행 바람은 식기는커녕 더욱 거세지는 추세다. 국내여행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가족 단위, 모임 단위의 단체여행을 비롯하여 개별 여행자들의 수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늘었다. 여행은 이제 빼놓을 수 없는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그것이 노동에 지친 생활인들의 휴식을 위한 것이든, 좀 더 여유로운 삶을 만끽하고자 하는 유희 본능에서 나온 것이든, 혹은 미지의 세계를 알고 싶어 하는 욕망에서 나온 것이든 우리의 삶에서 여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커져가고 있다. 여행을 하지 않고도 아무 탈 없이, 아무 불평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고려하자면 여행이 삶에 반드시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여행은 필요의 산물이 아니라 욕망의 산물이다. 여행이 사치이던 시대가 분명히 있었다. 먹고살기 바빴던 시절에 여행은 감히 꿈조차 꾸기 어려웠다. 물론 그 시절에도 자유롭게 여행 다닐 수 있는 이들이 있었고, 지금도 여행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어쨌든 여행은 보편화되었다. 이제 개미처럼 평생 일만 하면서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두 번째 조건은 누구나 사진을 찍고, 또 유통시킬 수 있는 물적 조건이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하기 전에도 사진을 찍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현상, 인화를 대신 해주는 전문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질의 사진을 얻을 수 있는 고성능 카메라는 고가였고, 값싼 자동카메라는 성능이 좋지 않아 사진의 질이 낮았다. 여행 가면서 고성능 카메라를 메고 가는 사람은 좀처럼 보기 어려웠으며 휴대용 자동카메라는 단지 기념촬영용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 카메라의 성능은 상향평준화되었다. 전지 크기(20x24인치)로 인화해도 별 무리가 없을 정도의 고성능 카메라가 스마트폰에까지 장착된 것이다. DSLR카메라는 성능 면에서나 습득의 용이함에서나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진화했다. 조금 과장시켜 말하자면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자제품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다. 매뉴얼만 읽어 보면 누구라도 조작이 가능한 기계가 된 셈이다. 나아가 일반 디지털 자동카메라는 카메라의 원리를 전혀 모르는 어린아이라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편리하니 그야말로 누구나 사진가가 될 수 있는 시대이다. 사진의 유통이라는 측면에서도 상황은 크게 변했다. 자신이 촬영한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 지식정보를 제공할 수 있고, 반대로 타인의 사진을 통해 폭넓은 정보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 가치의 교환이 자유로워진 셈이다. 심지어는 초등학생들도 카페와 블로그에 자신이 찍은 사진을 올려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으니 사진의 유통은 전 방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조건에서 여행사진이 세인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온라인상에서 주목을 받으면 출판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아 여행사진은 온라인상에서 뿐만 아니라 인쇄매체를 통해서도 각광을 받는다. 이러한 현상은 분명 반길 일이다. 우선 개인사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여행은 개인에게 특별한 가치가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이를 기억할 수 있도록 사진으로 남겨놓는 것은 그래서 의미 있다. 또한 교양, 학습의 측면에서도 여행사진은 긍정적인 가치가 있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대해 미리 알려주기 때문이다. 낯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을 함께 갖고 있는 이들에게 타인이 제공하는 여행사진은 기대 이상의 학습효과가 있다. 사진술이 발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행사진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급기야 하나의 장르를 형성할 만큼 확산되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물론 여행사진 생산의 저변에는 제국주의 지배의 전초단계에서 필요한 지식 구축의 논리가 깔려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어쨌든 여행사진이 생산되는 현실적인 양상을 보면 몇 가지 부정성이 눈에 띈다. 우선 제한적으로 두 가지의 문제에 대해서만 언급하기로 하자. 이를 구분하여 첫째는 신성의 박탈, 둘째는 경험의 축소라 규정하겠다.
변질된 세계
신성의 박탈은 통속화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지는 보통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곳, 문명사적으로 가치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비록 관광지로 변해버렸을지라도 거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성이 있다. 지금은 관광객들로 우글거림에도 불구하고 그 곳은 본래 ‘특별한’ 장소였다. 따라서 그 곳이 역사의 숨결이 살아있는 장소라면 존중의 자세가 필요하다. 물론 그 ‘특별한’ 장소에 내가 있었다는 사실 또한 특별한 일임에 틀림없다. 여행자들이 그 곳에서 사진 찍기에 열중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그 행위에는 탐욕이 앞서 있다. 하여 한 때는 사원이었던 곳이 일개 피사체로 전락해 버리는 모습은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곳이 어떤 곳이었는지조차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단지 사진만 찍는 경우도 허다하다. 서양의 성당건물이나 성, 동양의 사원이나 궁궐 등에는 매우 복잡한 역사적 사연들이 얽혀있지만 대개는 건축물의 외면을 사진에 담아내기에 급급한 것이다. 때로 여행지에서 보내는 시간의 대부분이 사진 촬영에만 집중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여행이 산 경험을 하러 가는 것인지 죽은 사진을 찍기 위해 가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인 것이다.
신성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는 여행사진의 초기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최초의 여행사진가로 알려져 있는 프랑스인 막심 뒤 캉(Maxime du Camp)은 1849년 정부의 기금을 받아 이집트 여행을 했다. 이집트의 유적을 촬영하여 교육 자료로 활용하겠다는 기획이 받아들여져 프랑스 교육부의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그는 200여점의 이집트 사진을 남겼으며, 그 중 일부를 모아 발행한 사진첩은 여행사진의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런데 그가 람세스2세의 신전을 촬영한 사진에는 누비아인 조수가 람세스2세의 거상 위에 올라가 있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신전의 규모를 보여주기 위해 신전 위에 사람을 세워놓고 촬영했던 것이다. 물론 이를 악의적인 신성모독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플로베르의 친구이기도 했던 이 박식한 교양인의 처신은 그리 적절한 것이 못된다. 노트르담 성당에서도 과연 그리 했을 것인가. 타문명의 유적을 사진으로 담아내겠다는 욕심이 앞선 나머지 대상에 대한 존중은 염두에 두지 않았던 셈이다.
여행사진가들의 탐욕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19세기 중후반과 20세기 초반은 여행사진의 전성기였으며, 마치 세계 전체를 사진에 담아내기라도 할 것처럼 여행자들은 어마어마한 양의 사진을 생산해 냈다. 하지만 실제 여행사진에 담긴 세계의 모습은 상당 부분 변질되어 있다. 그렇다면 여행사진은 왜, 어떻게 세계를 변질시켰는가.
여행사진의 정서는 본질적으로 이국취향과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 평소에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을 굳이 사진에 담아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사진에서는 평범함과 일상성이 주제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여행사진의 목적은 다른 데 있다. 여행은 낯선 세계와의 만남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행사진은 낯설고 기이한 세계를 찾아내어 보여주고자 한다. 여행자들은 이국정서 때문에 낯선 세계에 반하고, 그 정서를 고스란히 사진에 담아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본래 모든 세계란 현지인들에게는 전혀 이국적이지 않다. 그들에게 이국적인 세계는 자기 세계의 바깥에 있다. 결국 여행자들은 자신이 속했던 세계와는 이질적인 모습에 눈길을 돌리게 마련이고, 그렇게 생산된 사진에는 이국정서가 담길 수밖에 없다.
19세기 서양의 여행자들은 오리엔탈리즘적인 시각에서 여행지를 바라보았다. 중동지역과 아시아, 아프리카 등 그들에게 ‘타자’였던 세계는 미개하고 열등한 나라이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였다. 그리고 그들의 여행사진에는 이러한 시각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서양에 비해 물질적으로 낙후된 세계에서 여행자들은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주로 사진에 담았고, ‘평균인’에 못 미치는 하층 계급의 사람들이나 병자, 맹인, 걸인들에 관심을 쏟았다. 그들은 단지 ‘포토제닉한’ 피사체였을 뿐이다. 개항 이후 한국을 방문했던 서양의 여행자들도 주로 이런 관점을 유지하고 있었다. 상하수도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서울 거리는 그들에게 더럽고 불결하며 비위생적인 곳으로 각인되었고, 궁궐은 아직 ‘민주적 공화제’를 채택하지 못한 구체제의 왕조가 칩거해 있는, 겉모습만 웅장한 구시대의 유물이었다. 또한 한국의 아이들은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거리를 배회하는 ‘가엾은’ 대상이었으며, 하층 계급의 여인들은 젖가슴을 드러내놓고 생활하는 것에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미개한 인간으로 간주되었다. 서양의 여행자들은 그렇게 한국을 보았고, 그렇게 한국을 찍었다.
잃어버린 경험
사실 한국의 여행자들이 세계 각지에서 찍어오는 사진이 이와 다르지 않다는 보장이 없다. 특히 동남아나 인도, 중국의 일부 지역처럼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을 여행할 경우 타자의 시각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반대로 유럽이나 아메리카 지역에서 촬영한 사진은 동경과 선망이 섞여 이상화된 형태인 경우가 다반사이니 참으로 우스운 노릇이다. 이런 관점에서 생산된 방대한 양의 여행사진들은 세계에 대한 지식을 담고 있는 책과 다를 바 없다. 그렇게 여행사진은 세계를 사진이라는 책 속에 구겨 넣는다. 세계가 이미지로 축소되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 앨범이나 책상서랍 속에 사진을 처박아 넣어두었듯이 컴퓨터에 데이터 상태로 세계를 저장해둔다. 얼마 전까지 세계가 단지 종이 위에 출력된 이미지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숫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데이터로 전락한 것이다.
옛 어른들은 사람이란 여행을 해보아야만 성숙해진다고들 했다. 그리고 사람을 알려면 함께 여행을 해보라고 했다. 여행이 시야를 넓혀준다는 의미일 게다. 자기 세계에만 갇혀 살면 다른 가치를 보지 못한다. 따라서 다른 세계를 봄으로써 내가 몰랐던 다른 가치들을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여행은 인간을 고양시킨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여행은 과거처럼 살아있는 경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회적인 유희수단으로 변질되었다. 사람들은 세계를 체험하러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디지털 데이터화시키러 간다. 인화된 사진을 수집하는 것이 곧 세계를 수집하는 것이라 믿었던 시대가 있었다. 그래도 그 때는 비록 종잇조각에 불과한 이미지라 할지라도 앨범 속의 세계를 꺼내보면서 회상에 잠기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마저도 하지 않는다. 폴더 속에 데이터로 저장해둔 채 만족해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의 여행사진은 세계에 대한 데이터(정보)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의 발현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욕망은 만족을 모르는 법이다. 하여 여행자들은 자신이 찍지 않더라도 쉽게 구해 볼 수 있는 여행지의 모습을 직접 찍어 와야 만족해한다. 오늘날처럼 여행사진이 도처에 넘쳐흐르고 손쉽게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결국 같은 데이터가 무한히 반복 재생산되는 셈이다. 굳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자신의 경험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여행지에서의 생생한 경험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조급한 욕망에 집착할 까닭이 있을까 싶다. 혹여 그것이 사진 중독의 병리적 징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진을 찍지 않으면 여행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