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메이드'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1/05/27 R. Mutt
  2. 2011/03/12 레디 메이드
  3. 2010/03/23 <In Between Layers>전(展)
  4. 2009/06/18 마르셀 뒤샹

R. Mutt

예술 2011/05/27 00:36
오래 전에 마르셀 뒤샹 평전을 사놓고 읽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틈틈이 읽다보니 저 유명한 샘(Fountaine)에 관한 내용이 나와 생각을 더듬어 본다. 베르나르 마르카데의 <마르셀 뒤샹 - 현대미학의 창시자>, 뒤샹 평전으로는 분량이나 자료의 방대함에서 다른 평전들을 압도한다. 뭐 뒤샹 전기가 많은 것도 아니지만... 티리 드 뒤브의 <레디메이드의 반향>에 실린 아티클 한 편이 이 사건을 소상히 다루고 있어 예전에 읽어본 적이 있는데,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내용이 거의 비슷하다. 김광우 선생이 쓴 뒤샹 전기도 있어 국문판으로는 참고할 만하다.

좌우간, 이 오브제는 <독립예술가협회(Society of Independant Artists)가 기획한 전시에 출품했다가 '거부' 당한 물건, 혹은 작품이다. 이 협회는 입회비 1달러와 연회비 5달러를 내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고, 회원이라면 누구나 작품을 전시할 자격이 있었다. 1,200명의 작가가 2,125점의 작품을 출품했던 대규모 전시, 그래서 'Big Show'라 불렀다. 전시 받침대 상단선의 길이가 약 4킬로미터로 아모리 쇼 전시장 넒이의 두배였다니 엄청난 규모였다. 어쨌든,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샘'은 전시되지 않았고, 카탈로그에도 소개되지 않았다. 협회의 규정상 공식적으로 거부될 수 없었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숨겨졌다. 뒤샹의 말을 빌자면 "그 작품은 단순히 제거되었다. (...) '샘'은 그저 칸막이벽 뒤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샘'에 표기된 서명 'R. Mutt'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았다. 로잘린 크라우스도 젊은 시절 나름의 견해를 내놓았던 적이 있는데, 뒤샹은 '그 아가씨'의 해석은 전혀 쌩뚱맞다고 말한다. 다양한 해석들을 열거하자면 이 서명은 '바보'(영어 mutt), '가난'(독일어 armutt, 이것이 로잘린 크라우스의 해석이다), 심지어는 '어머니'(mutter)로 해석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뒤샹은 이렇게 말한다. "무트(Mutt)는 거대 위생기구 기업의 이름인 모트 워크스(Mott Works)에서 딴 것이다. 그러나 모트(Mott)는 그 기업 이름과 너무나 유사했다. 그래서 나는 무트(Mutt)로 바꿨다. 왜냐하면 그 당시 매일 상영하는 만화 영화가 있었는데 제목이 <무트 앤 제프(Mutt and Jeff)>였고,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즉각적인 반향이 있었다. 무트는 키 작고 웃기는 사람이고, 제프는 키가 크고 마른 사람이다. 나는 관심을 안 끄는 이름을 원했다." 나아가 뒤샹은 서명 때문에 야기된 해프닝과 오해, 과장 등에 대해 풍자적으로 비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리처드(Richard)를 첨가했다. 리처드란 이름은 소변기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가난함의 정반대(이름 속에 부자rich가 들어가므로) 의미가 보인다. 그러나 그것조자 아니었다. 단지 'R'만 집어넣었다. R. Mutt." 
뒤샹은 오히려 '관심'에서 멀어지려 했을 뿐이다. '진지함'에서 멀어지려 했다는 의미다. 심각하고 진지한 예술, 이것에 대한 조롱이라 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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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 메이드

예술 2011/03/12 00:44
뒤샹의 글을 읽다가 레디메이드에 관해 강연했던 내용이 있어 흥미로운 부분만 발췌해 본다. 우선 제임스 스위니, 피에르 카반느와의 인터뷰에서도 반복했던 얘기라 유명한 대목인데, 뒤샹은 레디 메이드의 선택이 미적 호불호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즉 시각적 무관심의 상태, 그리고 취향의 부재 상태(좋은 취향이나 나쁜 취향 모두를 떠나서)에서, 말하자면 '완전한 무감각' 상태에서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얘기하려면 길다. 하여 넘어가고...

뒤샹은 레디 메이드를 몇 종류로 구분하는데, 그 중 하나가 이른바 '수정한 레디메이드'이다. 1913년 자전거 바퀴를 부엌에서 쓰는 등받이 없는 의자에 붙여놓은 최초의 레디메이드가 그것이다. 제일 유명한 소변기, 그러니까 '샘'은 그냥 레디메이드라 불러도 될텐데 이것과 비교하면 '수정하지 않은 레디메이드'로 분류된다. 재미있는 건 뒤샹이 이 '수정한 레디메이드'의 제목을 붙일 때 "ready-made aided"라 했다는 것, 미국에서 활동할 때니 당근 영문으로 제목을 붙인 것인데, 이게 실은 뒤샹의 말놀이이다. 이 사람은 일명 '두운법'이라고 말하는(표현 참 어렵다), 자음의 반복을 좋아하는데, 메이드, 에디드, 이렇게 발음이 반복되는 것이 재미있어서 그런 제목을 붙인 것이다. 뭐 물론 의미도 고려했겠지만... 어쨌든 그래서 번역하면 '도움받은 레디메이드'쯤 되겠다. 하여 나중에 프랑스의 미술사가들은 주로 'ready-made assiste'라고 번역하곤 했는데, 의미는 같아도 발음의 묘미는 없다.



또 하나, 뒤샹은 아주 손쉽게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방법, 그냥 수퍼에서 사다가 싸인만 하면 되는 이 방법을 남용하는 걸 경계했다. 뒤샹은  그 시대에는 예술이 아주 쉽게 중독되는 마약과도 같았다고 언급하는데, 말하자면 익숙해지는 것, 습관화되는 것, 그래서 그것이 취향이 되는 것을 경계했다고 보면 되겠다. 습관이 취향을 만든다는 얘기, 그래서 좋은 취향과 나쁜 취향, 고급 취향과 저급 취향의 차이란 단지 습관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라는 얘기를 어디 다른 글에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좌우간 그래서 뒤샹은 레디메이드를 이런 종류의 '전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함부로 오브제를 '선택'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여 아주 가끔씩만 제작했다.

마지막 하나는 복제의 문제. 레디메이드는 전혀 유일무이한 하나가 아니다. 즉 복제된 레디메이드도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뭐 원래 공장에서 나온 것이니까... 그리고 실제 각 미술관에 소장된 레디메이드 작품들은(뒤샹의 이 글은 1961년에 발표되었다) 모두 복제품이다. 제일 유명한 '샘'의 '원본'은 전시되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전시가 거부되었으니 그 원본을 직접 본 사람은 뒤샹과 '빅쇼'의 심사위원들, 나중에 사진을 찍었던 만레이와 스티글리츠 정도밖에 없다. 원본의 의미가 없으니 사라지거나 말거나 상관없었을 테지만...

글의 말미에 뒤샹은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예술가들이 사용하는 그림물감(튜브에 들어있는)은 공장에서 생산된 것이므로 세상의 모든 그림은 '도움받은 레디메이드(ready-made aided)'라는 것. 여기서 내 생각을 얘기하자면 화가들이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캔버스를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한 그 또한 '도움받은 레디메이드(ready-made aided)'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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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잔다리에서 열린 한성필의 <In Between Layers>전, <파사드> 연작의 후속편이다. 건물 보수 공사기간 동안 건물의 전면에 실재와 유사한 가림막을 설치한 모습을 촬영한 사진과 ‘눈속임 회화(Trompe-l’oeil)’가 그려진 건물을 촬영한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에 그려진 가짜그림은 아주 정교하여 실제 건물과 그림의 경계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한성필의 작업에 대해 썼던 몇 편의 글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이런 종류의 작업은 레디메이드의 개념이 들어가 있다. 누군가가(필시 뺑기쟁이로 취급받을 것임이 분명한 무명화가) 건물 벽에 그려놓은 그림, 요컨대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품인 그림을 다시 사진으로 찍어 작품으로 화랑에 건다, 이 과정은 뒤샹이 BHV에서 물건을 사다 서명하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전시장에 갖다놓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레이메이드는 뒤샹만의 것은 아닌 셈이다. 한 십년쯤 전에 바르셀로나에서 봤던 필립 토마스(Philippe Thomas)의 전시제목은 “레디메이드는 모두의 것이다”였다.


그러고 보면 사진을 찍는 것은 레디메이드를 선택하는 행위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사진은 무엇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찍어내는 것이니까 말이다. 세상에 자연 상태로 널려있는 것을 찍는 것이나,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것을 찍는 것이나 별 차이는 없다.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찍을 것이냐 아닌가. 하여 레디메이드는 예술에 대한 아주 근원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있는 중요한 개념이다. 해괴하기도 하고 발칙하기도 하지만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는다면 현대예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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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뒤샹

예술 2009/06/18 16:24

어떤 예술가를 가장 좋아하느냐는 호사가들의 질문에 나는 주저없이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오, 라고 대답한다. 다른 종류의 질문, 예컨대 어떤 가수를 가장 좋아하느냐, 어떤 영화를 가장 좋아하느냐, 하는 류의 질문에는 대답할 말이 없지만 이 질문에 만큼은 답을 갖고 있는 것이다. 물론 좋아하는 다른 예술가들도 많다. 마네는 내게 특별하며, 암스테르담의 고호 뮤지엄에서 보았던 그의 원작들은 '너무 유명해서' 일부러 싫어하려고 노력했던 내가 얼마나 유치한 사람이었는가를 깨닫게 해주었으며, 귀스타브 모로는 정말이지 색상 하나하나가 보석처럼 반짝거려 화려함의 극치가 무엇인가를 알게 해주었으며(화려함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 알았다), 플랑드르 회화의 엄밀함(바젤에서 보았던 듯, 잘 기억나지 않는다)에 대한 나의 호감은 시간이 갈수록 커간다. 하지만 뒤샹은 전혀 다른 측면에서 아주 특별한 예술가이다.

어떤 예술을 할 것인가, 어떤 작품을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보다도 예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예술가가 만나게 되는 최초의 질문을 가장 진지하게 던진 자가 바로 그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진부하다 못해 헛웃음까지 나오게 만드는 이 우스운 질문, 어쩌면 유치하고 또 어쩌면 암담한 질문, 그러나 거기에 화답하려는 시도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예술을 시작조차 할 수 없는 질문, 자신이 예술가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을 작품의 내용으로 끌어들인 본격적인 예술가, 그가 뒤샹이다. 이 사람으로 인해, 이 사람이 던져놓은 곤혹스런 질문 앞에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이 난처해 했는지, 또 얼마나 현대예술의 성격이 크게 변화했는지는 책 보면 다 나온다. 물론 거기에는 확대해석도 있고 축소해석도 있으며, 당연히 엉터리 해석도 있다. 따라서 가장 좋은 길은 뒤샹에게 직접 다가가는 것이다. 뒤샹의 말을 직접 들을 수 있는 대담이 몇 개 있으며(피에르 카반과의 대화, 제임스 스위니와의 인터뷰 2편, 앞의 것은 번역본도 있다), 뒤샹이 직접 쓴 작업노트와 에세이집도 있다. 뒤샹의 작업노트는 플라마리옹에서 <Duchamp du Signe>라는 제목으로 묶여 출판된 지 오래 되었으나 뒤샹 연구자들은 그것을 별로 참조하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물론 어렵긴 하다. 그래도 뒤샹 연구자라면 읽어야 하지 않을까(나는 뒤샹을 좋아하는 사람이지 뒤샹 연구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또한 뒤샹을 가장 잘 이해했다고 평가받는 리오타르의 <Transformer, Duchamp>(원래 불어판은 값이 싼데, 영문판은 장사꾼들이 너무 크게, 비싸게 만들어놨다)도 읽어볼 만하다.

어쨌든, 재미삼아 레디메이드에 대한 뒤샹의 발언을 정리해 본다. 알다시피 뒤샹은 BHV(프랑스의 대중 백화점)에서 갖가지 물건들(병걸이, 의자, 다리미, 변기 등)을 구입하여 싸인한 후 '작품'으로 전시했다.(그 중에는 싸인하지 않은 것도 있다. 따라서 서명을 통해 예술작품이 아닌 것을 예술작품으로 변환시킨다는 해석은 과장이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그의 작품은 예술가의 손재주, 즉 기예의 산물이 아니라 선택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초이스가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어떤 초이스인가? 뒤샹은 말한다. 그 선택은 취향의 부재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요컨대 뒤샹 자신의 취향을 배제한 상태에서 선택한다는 것이다. 하여 말하자면, 자기가 오브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오브제가 자기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기이한 발상... 우리는 보통 식당에서 메뉴를 선택할 때도 자기 취향을 따르고, 옷이나 신발, 휴대폰 등 모든 물건들을 자기 취향에 따라 택한다. 생각을 바꾸기는 쉬워도 취향을 바꾸기는 어렵다. 나아가 취향을 배제한 상태에서 행위를 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런데 그는 '작품'을 선택할 때 힘들게 취향을 빼내려 애쓴다. 그가 평생동안 제작한(혹은 선택한) 레디메이드는 17개(14개였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냥 수퍼마켙 가서 사오면 될 터인데 말이다. 물론 평생이라 해도 근 20년 동안 예술계를 떠나있었으니(그 동안 그는 체스에 미쳐있었다. 세계 체스선수권대회에도 출전했으나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정말 일평생을 작업에 바쳤던 다른 예술가들에 비하면야... 그래도 그는 20년 후 <Etant donne>라는 대작을 갖고 나왔다. 체스만 두지는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이런 기묘한 선택을 두고 뒤샹은 다시 그것이 '랑데부(Rendez-vous)'라고 말한다. 자신과 오브제와의 약속, 혹은 만남, 레이메이드는 그렇게 약속의 산물이다. 한 편에 일방적이지 않은 만남, 약속이란 그런 것이다. 예술가의 편에서 일방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오브제를 만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그 역도 마찬가지. 진정한 만남은 그래서 기다리는 것, 만날 준비가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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