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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2/19 디지털 복제시대의 사진
  2. 2011/05/11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무한변신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시대의 문화지형을 빠른 속도로 변화시켜 왔다. 이 테크놀로지에 기초한 문화는 이제 기계 마니아들만이 향유하는 특수한 문화가 아니라 우리 시대 전체의 문화로 확산되었다. 바야흐로 디지털 문화의 시대가 열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터넷과 스마트폰, 아이패드 등 디지털 문화를 이끌어 나가는 하드, 소프트 웨어의 영역에서 사진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사진 없는 디지털 문화란 상상하기 어렵다.

여기에는 사진이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통해 아주 쉽게 생산, 유통될 수 있다는 점이 주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누구나 디지털 카메라로 원하는 사진을 찍어 파일 상태로 보관할 수 있으며, 마음에 드는 사진을 타인과 주고받을 수 있다. 인터넷의 가상공간에 그 사진을 올려 대량으로 유통시킬 수도 있으며, 타인의 사진을 함께 공유할 수도 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클릭 한번으로 사진을 제거해 버릴 수도 있고, 마음이 바뀌면 다시 환생시켜낼 수도 있다. 손오공의 마법처럼 같은 사진을 대번에 여러 장 복제해낼 수도 있고, 크기를 마음대로 키우거나 줄일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원본(데이터로 존재하는)의 품질은 전혀 훼손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사진의 생산과 유통에 미친 영향은 다양한 각도에서 검토해 볼 사안이지만, 우선 복제의 측면에서 생겨난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벤야민이 사진 복제가 가져온 문화사적 변화에 대해 언급하는 대목과 관련하여 다시금 우리 시대의 복제문화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지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디지털 복제는 기존의 아날로그적 사진 복제와 질적으로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일상에서부터 예술작품의 생산과 수용, 특히 예술로서의 사진에 이르기까지 주목할 만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먼저 아날로그 시대의 사진 복제가 어떤 형태로 이루어져 왔는지 살펴보자. 최초의 복제 시스템을 고안했던 이는 영국인 탈보트이다. 탈보트보다 먼저 사진술 발명자라는 영예로운 지위를 얻었던 이는 니에프스의 연구를 발전시킨 다게르였지만, 그가 고안했던 다게레오타입은 복제가 불가능했다. 반면 탈보트의 칼로타입은 종이원판에서 여러 장의 사진인화를 복제해 낼 수 있어 오늘날의 사진 복제시스템을 처음 실현시킨 방법이었다. 그런데 칼로타입은 불투명환 종이원판을 사용하는 까닭에 신속하게 복제를 해내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복제를 계속해낼 때마다 종이원판이 훼손되어 복제할 수 있는 양에도 한계가 있었다. 칼로타입의 복제력이 비약적으로 증대된 것은 두 가지의 기술적인 개량 덕분에 가능했다. 공식적으로는 1851년에 개발된 밀랍지법과 알부민법이다. 전자는 종이원판에 밀랍을 입혀 종이의 공기구멍을 막아 이미지의 선명도를 높이고 원판의 표면에 견고성을 부여했다. 후자는 감광도를 높여 한 장의 원판에서 하루 500장 정도의 인화가 가능하도록 했다. 알부민 인화는 초기의 칼로타입이 지녔던 복제력에 비하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이지만 이를 두고 벤야민이 언급한 전시가치가 대번에 실현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전히 복제의 양에는 제약이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무한복제가 가능해진 것은 사진인쇄, 특히 망판인쇄술이 보급되면서부터이다. 이전에도 사진인쇄는 가능했지만 활자와 함께 인쇄할 수 없어 실용화에 이르지는 못했다. 반면 활자와 사진을 동일지면에 인쇄할 수 있는 망판인쇄가 등장하면서 사진은 세계를 뒤덮게 되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사진을 볼 수 있는 세상, 역으로 말하자면 어디를 가더라도 사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세상, 그야말로 사진의 편재(遍在)가 시작된 것이다. 벤야민이 언급한 기술복제 시대는 바로 이처럼 사진의 무한복제와 더불어 열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무한복제에도 한계는 있다. 우선 사진의 생산자, 그리고 그 사진을 복제하는 주체가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감광도가 높은 건판필름과 자동카메라는 사진의 생산자 층을 잠재적으로 광범위하게 넓혀놓았지만 복제를 통해 만나게 되는 사진의 생산자는 여전히 특별한소수였다. 이는 복제의 주체가 일반 대중이 아니라 매체였기 때문이다. 즉 한 장의 사진은 그 사진을 활용하고자 하는 매체의 방침과 부합할 때만 복제될 수 있었다. 요컨대 복제 가치가 있는 사진을 찍은 자만이 사진의 진정한 생산자일 수 있었다. 그렇지 않은 경우 사진은 사진가의 손을 떠날 수도, 복제될 수도 없으며, 결국 그 사진가는 사진의 생산자일 수 없었다. 둘째, 복제된 사진 이미지의 수용자는 단지 수용자일 뿐, 그 사진을 다시 복제해낼 수 없었다. 물론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사진을 카메라로 다시 찍어 복제해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을 복제라고 하기는 어렵다. 복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가 곧 현실의 피사체를 촬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복제 이미지의 품질이 원본보다 못하다면 복제 행위는 훨씬 쉽고 간편해야 한다. 그래야 복제의 가치가 생긴다. 하지만 이 경우 촬영 행위와 복제 행위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셋째, 촬영을 통해 얻어낸 복제 이미지는 원래의 원본에 비해 품질이 낮다. 이 차이가 아무리 미세하다 할지라도 물리적인 차이는 반드시 발생한다. 아날로그 방식이기 때문이다. 즉 아날로그는 유사를 속성으로 삼고 있는 탓에 반드시 원본과 다르다. 복제가 거듭될 때마다 품질은 낮아져 원본이 갖고 있는 정보는 상당 부분 훼손되는 것이다.

한편 디지털 복제는 아날로그 방식의 복제가 갖고 있는 이런 단점을 대부분 극복할 수 있다. 먼저 품질의 문제. 아날로그 복제에는 원본이 있다. 복제를 가능케 하는 무엇, 즉 복제가 시작되는 지점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다. 복제물과 원본의 차이가 거의 없더라도 복제의 대상은 있는 것이다. 사진 복제의 경우 필름이 원본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디지털 복제의 경우는 원본과 복제본의 물리적 차이 없이 무한 복제가 이루어진다. 때로 복제본이 원본이 되기도 한다. 이는 디지털 사진의 원본이 이미지가 아니라 데이터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미지는 유사를 토대로 하지만 데이터는 숫자를 근간으로 삼는다. 숫자는 유사를 배제하므로 조금만 달라져도 다른 데이터, 즉 다른 이미지가 된다. 따라서 데이터 상태로 복제되는 디지털 이미지는 원본과 복제의 구분이 없다. 결국 디지털 복제의 경우 모든 복제본의 품질은 동일하다. 둘째, 디지털 사진의 생산자, 그리고 그 사진을 복제하는 주체는 특권을 부여받은 자들이 아니다. 이 문제는 결국 이미지의 유통과 긴밀히 연계되어있다. 아날로그의 경우 복제 가치가 있는 사진은 한정되어 있으며, 복제의 주체 또한 그렇다. 사진 복제에는 일정한 시간과 경비가 소요되므로 복제할 사진은 소수로 한정된다. 즉 복제의 목적이 분명할 경우에만 복제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디지털 복제의 경우는 시간도, 경비도 필요치 않다. 또한 거기에는 특별한 목적이 없다. 디지털 복제는 오히려 유희적이다. 누구나 특별한 목적 없이 사진 복제를 행하는 것이다. 이제 복제는 정치적, 사회적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유희를 위한 것이 되었다. 복제 본을 만들었다가 언제라도 파기할 수 있고, 다시 또 복제해 낼 수 있는 것이 오늘날의 복제문화이다. 셋째, 디지털 복제는 모든 정보를 사진이미지로 환원시켜낸다. 원본이 사진인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그림이나 만화, 심지어는 문자 텍스트마저도 사진 복제라는 매개를 거쳐야만 정보가 된다. 즉 우리가 디지털 복제를 통해 접하는 모든 정보는 사진을 기본 단위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플루서가 선형문자라 불렀던 것마저도 기술 이미지로 변환시켜 정보로 받아들인다. 그야말로 디지털 복제가 창궐하는 시대이다.

이런 조건에서 예술작품, 특히 사진은 다시 한 번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변화는 매우 복잡하게, 그리고 불명료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우선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문제들 몇 가지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우선 처음으로 사진 복제의 문제를 언급한 벤야민을 따라 디지털 복제 시대의 전시가치에 대해 살펴보자. 이 문제는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첫째, ‘사진작품이 전시장에서 관객과 만나는 경우와 둘째, 이 작품이 복제 이미지로 가상공간에서 유통되는 경우이다. 첫 번째 경우 사진작품은 여전히 전시가치보다는 제의가치에 묶여있다. 사실 전시장에 입성하는 사진작품은 대부분 디지털 방식으로 출력되어 벽에 걸린다. 그런 점에서 이 사진들은 첨단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단지 인화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결국 아날로그 방식과 근본적으로 유사하다. 여전히 전시장이라는 공간의 특별한 의미에 집착하고 있으며, 결국 전시가치를 위한 공간이 제의가치에 매달려 있다 하겠다. 왜냐하면 미술관이나 상업갤러리에 전시된 사진은 관람자에게 복제품이 주지 못하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해야 하며, 그 경험은 바로 그 장소에서만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설혹 그 작품전시가치가 있더라도 전시장을 찾는 이들의 수는 제한적이어서 무한복제를 통해 증폭하는 이미지들의 전시가치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미술관을 통해 유통되는 사진작품들이 전시가치를 극대화시키려면 전시장을 버리고 복제이미지에 의존하여 가상공간을 배회해야만 하는가? 이 경우 사이버 갤러리의 가능성이 아직 남아있다.

두 번째의 경우, 복제된 사진작품은 무수히 많은 불특정 다수의 관람자와 만날 수 있다. 그야말로 전시가치가 극대화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 복제 이미지들은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진짜 작품에 비하면 품질이 훨씬 낮다. 따라서 심미적 체험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 복제 이미지들이 제공하는 경험의 두께는 매우 얇은 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품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개의 관람자들은 전시장 벽에 걸린 사진작품사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로 받아들인다. ‘사물이 제공하는 미세한 결을 감각적으로 더듬어나가면서 풍요로운 체험으로 확장시키기보다는 무엇이 찍혔는지, 사진가는 그것을 왜 찍었는지, 그 이미지는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는 말이다. 이 경우 사진의 물리적 품질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인터넷의 가상공간에서 볼 수 있는 복제이미지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많은 사진작품들이 저용량 디지털 데이터로 복제되어 가상공간을 둥둥 떠다니고 있다. 전시홍보용으로 신문, 잡지, 인터넷 매체에 제공한 데이터나 그 밖의 목적으로 만들어낸 디지털 이미지가 불특정 다수의 관람자들 사이에서 무한 복제되는 것이다. 이런 복제에는 기원도 없고, 원본도 없으며, 말하자면 복제본도 없다. 서로가 서로를 복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제의 목적 또한 없다. 단지 복제를 위한 복제, 혹은 유희로서의 복제일 뿐이다. ‘전시가치유희가치로 옮겨간다 하겠다.

디지털 복제가 야기한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복제의 원본이 되는 사진의 물질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아날로그 시대의 사진가들은 복제 이미지(오리지널 프린트라 불리는)를 필름이라는 물질로부터 얻어냈다. 그 물질의 권위는 확고부동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 없이 오리지널 프린트라는 또 다른 물질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바로 이 후자로서의 물질(복제품)이 원본으로서의 물질(필름)을 압도한다는 것이다. 원본으로서의 물질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서 자산가치가 높은 복제품으로서의 물질을 얻어낼 수 있는 한에서였다. 그런데 이제 이 원본으로서의 물질은 디지털 데이터에 자리를 넘겨주고 있다. 사진가들이 오리지널 프린트라는 복제품을 만들어낼 때의 원본은 디지털 데이터이다. 디지털 팩을 사용하여 애초부터 데이터 상태로 시작하거나, 필름으로 촬영하여 그것을 다시 디지털 스캔하여 데이터로 변환시키기 때문이다. 즉 디지털로 출력한 모든 사진들의 원본은 물질성이 없는 디지털 데이터이다.

위에서 살펴본 몇 가지 현상들은 비록 징후에 불과하지만 예술작품의 생산과 유통, 보존 등 다양한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이 변화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 것인지는 성급히 예단할 수 없다. 다만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진화가 무섭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이 일상에서부터 대중문화, 예술의 지형과 생태계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 또한 그렇다. 디지털 복제는 아날로그 사진 복제나 기술 이미지의 등장이 야기한 변화 못지않게 큰 지각변동을 가져 올수도 있다. 어쩌면 그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거나 진행 중인지도 모르겠다.

계간 황해문화 2011 겨울호
Posted by paixaube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무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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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테크놀로지의 급속한 팽창으로 사진의 생산과 유통 방식이 크게 변했다. 여전히 아날로그를 고수하는 이들이 있지만 카메라에서부터 인화에 이르기까지 디지털은 현재 ‘대세’이며, 앞으로 이런 경향은 점점 확산될 것임이 분명하다. 이 속도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빨라 어느덧 아날로그 카메라는 중고품 시장에서 헐값에 거래되고 있으며, 현상약품과 인화지는 구하기조차 어렵다며 푸념하는 소리도 들린다. 대학 사진학과에서는 더 이상 암실 테크닉을 교육하지 않고, 오히려 디지털 기술의 습득에 더 중점을 둔다. 바야흐로 디지털 사진의 시대가 열린 셈이다. 이런 조건 하에서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작가가 있고, 부분적으로만 수용하는 이도 있다. 단지 편리해서 취하는 이도 있고, 편리하더라도 물성이 강하다고 싫어하는 이도 있으며, 사진에 대한 ‘철학’ 때문에 거들떠보지도 않는 이가 있다. 당연히 정반대의 ‘철학’ 때문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도 있다. 요는 사진가들이 디지털 사진에 대해 취하는 입장이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갈린다는 것이다.

디지털 사진이 처음 출현했을 무렵 논자들은 이것이 사진의 진보인지, 혁명인지, 즉 아날로그 사진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와 단절하고 새롭게 탄생한 이미지 생산방법인지 혼란스러워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 여전히 명확한 확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양상을 보면 디지털 사진과 아날로그 사진의 차이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인상을 준다. 물론 이미지의 생성원리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결과물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양자 모두 카메라라는 광학도구가 개입하여 ‘기계적으로’ 만들어낸 이미지인 것이다. 아날로그, 디지털의 구분 없이 사진은 일점 원근법을 근간으로 삼고 있으며, 원추형 투사(Conical projection)의 원리에 따라 실재와 유사한 이미지를 무한히 복제해 낸다. 그런 점에서 디지털은 단지 수단일 뿐이다. 그런데 디지털 사진의 경우 이미지의 생산 과정에 조작(Operation)이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여 이미지 생산자들은 손쉽게 이미지를 변형시켜내곤 한다. 전문가들조차 구분해내기 어려울 만큼 조작은 간단하고 정교하다. 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이런 특성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작품을 생산해내고 있다.

현실과 허구, 실재와 가상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이런 이미지는 고전적인 사진 개념에 역행할 뿐만 아니라 때로 비 사진적인 이미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진은 오랫동안 ‘현실의 기록’으로, 나아가 ‘진실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실재보다 가상을, 현실보다 환영을 쫓는 오늘날의 디지털 이미지는 과연 사진이라 할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이런 질문은 이미 내부적으로 한계를 설정해 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즉 사진은 태생적으로 ‘현실의 복제’ 수단이었기 때문에 감히 현실을 넘어서려는 발상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진술의 발명 이후 170여 년 동안 사진은 줄곧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어 왔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으로 차근차근 사례를 들어가며 언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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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이 개량과 진화를 거듭해나감에 따라 이러한 경향은 점차 심화되는 추세다. 형태를 전면적으로 바꾸어 버리거나 가상의 형태를 조합해 내는 작가들은 차치하고라도 현재의 작가들은 대부분 사진에 수정을 가한다. 포토샵을 통해 톤과 색상을 보정하거나 형태를 명확히 하기 위해 윤곽선 처리를 하는 것은 상식이 되었다. 주제를 해치는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여 시각적 집중도를 높이는 일도 흔하며, 반대로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형태와 색상을 미세하게 변형시키는 경우도 많다. 물론 눈에 띄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행하는 이러한 ‘조작’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치 아날로그 흑백 사진 인화에서 톤을 강조하기 위해 닷징이나 버닝을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구르스키의 경우 아주 정교한 포토샵을 활용하고 있으며, 같은 베허스쿨 계보에 속하는 토마스 루프 또한 그렇다. 예컨대 토마스 루프의 <포트레이트> 연작은 모델들의 눈동자에 게르만 인종의 특성이랄 수 있는 푸른 색조를 가미한 작업이었다. 이러한 ‘조작’이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까닭은 근본적인 형태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히려 기본 형태를 강화한다. 이는 마치 스튜디오에서 초상사진을 찍은 후 눈, 코, 입의 형태를 강조하기 위해 간단한 보정처리를 하는 것과도 다르지 않다. 초상사진의 수정은 사실 아주 오랜 역사를 갖고 있어서 사진술 발명 초기의 사진사들은 뛰어난 수정기술자이기도 했다. 요컨대 수정은 형태를 변형시키는 기술이 아니라 형태를 강조하는 기술이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자면 이 또한 미시적이나마 형태의 변화를 가져온다. 따라서 디지털 사진에서 사용되는 미세한 수정이 문제될 까닭은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현실감(reality)의 농도이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현실감에 변화를 주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형태의 조합이다. 각기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추출해 낸 이미지 조각들을 퍼즐처럼 끼워 맞추는 것이다. 일종의 몽타주 기법과 유사하다 하겠다. 유년기의 기억에서 시작하여 꿈과 환상의 세계에 대한 현대인의 동경을 동화적 시각으로 표현하고 있는 원성원의 작업이나 근대 문화의 뒤틀린 욕망이 서구문화와 뒤섞여 오늘날 어떻게 우리의 일상에 침투해 있는가를 보여주는 난다의 작업, 개별적인 나무 이미지들을 조합하여 거대한 원시림의 형상을 구축해 나가는 이혁준의 작업 등이 여기에 속한다. 서로 이질적인 사물과 공간을 중첩시켜 디지털 매체가 촉발시킨 지각의 변화에 천착하는 임상빈이나 그림과 사진을 합성하여 전통적인 산수화의 개념을 비틀어나가는 임택의 작업도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이런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작품의 재료로 쓰이는 기본 이미지가 형태의 왜곡 없이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최종적인 작품은 카메라로 찍어낸 사진들을 기본 단위로 삼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든, 아날로그 카메라로 찍어 필름을 스캔하든 작품의 출발은 사진인 셈이다. 이런 작업은 형식의 측면에서만 보자면 그리 새로울 것이 없다. 이미 1930년대의 아방가르드 사진에서도, 나아가 19세기의 예술사진에서도 유사한 기법이 활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1850-60년대에 영국에서 활동했던 레일랜더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1857년 작 <인생의 두 갈림길>은 30여 장의 네거티브 필름을 정교하게 합성하여 한 장의 사진으로 인화해 냄으로써 사진은 자연을 충실히 재현해내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일반의 인식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의 조합인화에 대한 당대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려 복잡한 논쟁을 야기했지만, 조합인화에 대한 사진가들의 열망은 좀처럼 식지 않았다. 레일랜더에게 조합인화법을 배운 헨리 피치 로빈슨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조합인화야말로 사진에 작가의 혼과 영감을 불어넣는 유효한 방법이라 믿고 적극적으로 이를 활용한 경우다. 그의 작업에 대해 사진사가들은 ‘회화주의 사진’이라 폄하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스트레이트 사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했던 미국의 사관이 반영된 결과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스트레이트 사진’의 귀결점은 추상이었다. 따라서 조합인화에 대한 폄하는 사진에 대한 당대의 인식을 반영할 뿐이다. 거기에는 ‘축소된 사진 인식’이 바탕에 깔려있다.

이는 아방가르드의 시대에 등장한 포토몽타주에 대한 인식과 비교해 보았을 때 잘 나타난다. ‘시각적 혁신’이 주요 의제였던 아방가르드의 논리에서 볼 때 콜라주나 몽타주는 관습적인 시각에 균열을 가져오는 유효한 방법론이었다. 로드첸코나 쿠르트 슈비터스에서부터 라울 하우스만이나 존 하트필드와 같은 베를린 다다이스트에 이르기까지 콜라주, 몽타주는 환영받는 기법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포토샵을 활용하여 이미지를 조합해 내는 현상이 특별히 새로울 것은 없다. 우리는 다만 전례들을 망각하고 있을 뿐이며, 다른 한편에서는 수작업을 통한 조합과 디지털 기술을 통한 조합의 차이를 부풀려 중요한 사태로 받아들이고 있을 따름이다. 물론 관점에 따라 이 차이는 근본적인 사안이 될 수도 있다. 마치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낸 이미지(그림, 도안 등)와 기계가 만들어 낸 이미지(사진)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발생하듯 말이다. 후자의 경우 신체에 축적되어 있는 복잡한 유기체의 메커니즘, 요컨대 개인의 기억이나 감성, 취향, 스타일 등이 이미지의 생산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 기계적 조합의 경우에도 이런 불연속성이 생겨날 수 있다. 그러나 이 차이에 대한 고려는 오히려 포토샵을 사용한 조합된 이미지가 결국 기계적 방식으로 생산된 것임을 강조할 따름이다. 즉 이런 이미지는 수작업으로 제작된 조합사진보다도 오히려 기계적 이미지의 속성이 강하므로 더욱 ‘사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셈이다. 따라서 여러 장의 사진을 조합해낸 이미지를 두고 사진인지 아닌가를 묻는 것은 핵심을 비켜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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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건은 오히려 원형이 없는 이미지를 어떻게 볼 것이냐의 문제에 걸려 있다. 디지털 기술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 작가들은 파일 상태의 이미지를 변형시켜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형상화시켜낸다. 예를 들어 오를랑(Orlan)의 경우 스스로 성형수술을 하여 서구 중심적 미인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얼굴 형태를 제시해주던 방식을 바꾸어 이제 디지털 합성을 통해 다양한 문화권 속의 미인을 가공해 낸다. 그녀가 보여주는 인물들은 기실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던 가상의 여인들이다. 포토샵이라는 팔레트를 사용하여 그려낸 기계적 그림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조합 사진의 경우 최종 이미지를 구성하는 개별 단위들은 모두 현실의 조각들이다. 하트필드의 포토몽타주에는 히틀러의 모습도 있고, 괴벨스의 실제 얼굴도 있다. 난다의 사진에 등장하는 ‘모던 걸’ 또한 실제로 존재했던 세트장을 거닐고 있으며, 원성원의 사진을 구성하는 나무와 집도 원래의 공간에서 유리되었지만 실제로 어딘가에 있었다. 이 모든 요소들은 각기 자신의 지시대상을 분명히 갖고 있다. 반면 가공된 대상, 결코 존재했던 적이 없는 형상들은 자신의 지시대상을 현실 속에서 만날 수 없다. 오히려 이러한 이미지들의 지시대상은 이를 통해 작가가 지향하는 개념이나 속성들에 가깝다. 어떤 점에서 컴퓨터 그래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이미지들은 예술보다는 광고나 일러스트, 게임 등 환영의 효과를 노리는 분야에서 꾸준히 확장하고 있다. 비록 소수이지만 현대의 예술가들 또한 점차 그래픽 영상에 관심을 보이는 추세다.  

이런 작업들이 기존의 사진담론에 던져주는 파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아날로그 사진의 시대에는 비록 허구와 비현실의 세계를 넘나드는 이미지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사진이 현실의 기록이라는 담론의 성채가 여전히 굳건했었다. 사진은 명증한 기호이자 현실과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는 ‘기이한’ 이미지였던 것이다. 하여 바르트는 사진의 본질이 ‘그것은-존재-했었음’이라 규정할 수 있었다. 사진은 필연적으로 지시대상과 뗄 수 없이 달라붙어 있으며, 그 대상은 ‘실재(實在)’에 토대하고 있다는 생각도 부정하기 어려운 논리였다. 이의 연장으로 ‘다큐멘트(Document)’ 개념이 현대미술에 조금씩 스며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한 세기 이상을 지배해 왔던 기존의 사진담론은 거센 도전을 받게 되었다. 어린아이도 휴대용 카메라로 손쉽게 사진을 찍고 포토샵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변형시킬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일상에서의 작은 변화들이 축적되어 한 시대의 감수성과 취향, 관습을 바꾸어 나간다면 사진문화의 변화는 필연적이다. 그리고 사진이 일상화된 오늘날 이 문화를 해석하는 담론도 당연히 바뀌어야 한다. 본래 테크놀로지가 일상에 미치는 영향과 변화의 속도는 매우 빠르다. 그에 비해 예술의 변화는 훨씬 더디며 때로는 테크놀로지의 파도 앞에서 제 자리를 지키려고 버틴다. 하지만 비록 더디더라도 예술의 역사는 항상 그 변화에 조응해 왔다. 따라서 오늘날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가져오는 변화를 예술도 천천히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포토샵을 활용한 사진의 유형이 갈수록 다변화되고 있음이 그 변화의 징후라 할 수 있다. 비록 사진에 적용되는 디지털 기술이 아직은 이미지의 조합과 합성을 편리하게 하는 단순한 도구로 머물고 있지만 말이다. 한편 일상 속에서의 변화 양상은 훨씬 빠르고 폭도 넓은 편이다.

그러나 비록 ‘진실성’에 토대하고 있던 사진 개념이 예술담론 속에서 흔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진은 사실 관계를 입증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물론 이 지점에서도 테크놀로지의 파급력은 속속 현실화되고 있다. 예컨대 과거 사진기자들의 전유물이었던 ‘보도사진’은 휴대용 카메라를 소유한 익명의 대중으로 대체되기도 하고(인터넷상에 올라오는 쓰나미 사진의 경우처럼), 항상 어디에나 시선을 열어놓고 있는 CCTV가 사건현장(교통사고의 경우처럼)의 파수꾼 역할을 하기도 한다. 카메라라는 기계가 한 눈을 부릅뜨고 모든 것을, 언제나, 어디에서나 찍고 있는 것이다. 즉 사진은 여전히 ‘선택된 진실’을 알려준다.

한편 예술을 자청하는 오늘날의 디지털 사진은 ‘진실’이라는 담론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리고 예술은 언제나 그랬다. 즉 예술은 과학(Science)이 할 수 없는 것을 행한다. 예술이 할 수 없는 것을 과학이 하듯이 말이다. 오히려 예술은 과학이나 학문이 던져준 진실을 의심하고 회의하며 때로는 함정에 빠뜨릴 때 예술답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이를 실행해 옮기는 편리한 도구다. 허구와 가상의 세계를 제안하는 디지털 이미지가 사진인지 아닌지를 묻는 것은 그 이미지가 진실이냐 아니냐를 묻는 것과 별로 바를 바가 없다. 그 질문 속에는 사진은 ‘진실한 이미지’라는 전제가 암묵적으로 깔려있기 때문이다. 또한 거기에는 축소된 사진 개념이 은닉되어 있으며 현대예술을 장르에 따라 구분하고자 하는 모더니즘의 유산과 편의적 태도가 함께 작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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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정리를 위하여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관계에 대한 주요 논점을 정리해보기로 하자. 예술은 기예(Art)이기 이전에 테크네(Techne)로 출발했다. 테크놀로지는 항상 예술의 생산 방식을 바꾸는 원동력이었고, 여기에서부터 시대의 감수성과 취향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아주 멀리는 선사시대의 동굴벽화에서부터 가깝게는 사진에 이르기까지 테크놀로지의 개입은 비록 더디지만 근본적인 변화의 동인이었다. 동굴 벽에 식물을 갈아 만든 분말과 대롱을 사용하여 착색을 하면서 마그달레니아기의 벽화에 큰 변화가 생겨났으며, 유화물감의 발명과 튜브의 사용은 프레스코화에서 이젤화로의 변화를 초래한 계기였다. 사진술의 발명은 기계적 이미지를 통한 새로운 시각문화를 개척해 나갔으며, 망판인쇄술은 사진 이미지의 무한복제를 가능케 함으로써 오늘날의 이미지 시대를 여는 데 초석이 되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가장 최근에 생겨난 것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른 속도로 일상에서부터 예술에 이르기까지 이미지의 생산과 소비, 유통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범위와 속도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우리는 뢴트겐 사진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충격을 알고 있다. 또한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이 보여주는 비가시적인 세계의 모습에 대해서도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한발 더 나아가 소너 스캔을 사용하여 만들어낸 해저 지형의 모습은 빛이 아닌 다른 매개물을 통해서도 유사 이미지를 얻어낼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비슷한 의미에서 1991년 마젤란 호가 가시광선이 통과할 수 없는 금성의 대기를 뚫고 얻어낸 금성 사진은 또 어떤가. 사진을 ‘진실한 이미지’로 인식해 왔던 패러다임뿐만 아니라 사진은 ‘빛(Photo) 그림(Graphy)’이라는 정의 또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이미 테크놀로지가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어 무한히 이미지의 생산 방식을 전복시켜나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현재 사진의 영역에서 활용되는 디지털 기술은 아주 제한적이다. 단지 형태를 조합하거나 변형시키는 기법 정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테크놀로지는 도구이지만 예술은 도구를 사용하는 정신의 활동이다. 도구를 무시하는 정신도 절름발이이지만 도구에 잡아먹힐 것을 두려워하는 정신 또한 나약하기 그지없다. 그런 점에서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마주한 예술의 태도를 진지하게 성찰해볼 시점이 되었다.


(월간미술 5월호) 

 


Posted by paixa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