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에 해당되는 글 26건

  1. 2011/06/03 Projects Parts and Layers
  2. 2011/04/09 Dual Realities
  3. 2011/03/05 모든 사진은 기록으로 통한다
  4. 2011/02/27 Twins (2)
  5. 2011/02/13 산수&낙산
  6. 2011/01/12 델피르와 친구들
  7. 2010/09/06 강홍구
  8. 2010/08/22 워커 에반스전
  9. 2010/07/07 경계에서 (5)
  10. 2010/04/05 구성수 전(展) <Photogenic Drawing> (2)

원앤제이 갤러리에 니키리 전시를 보러 갔다. 작업에 대해서는 대강 알고 있었지만 전시를 본적이 없는지라 호기심이 있었는데, 궁금증은 좀 풀렸다. 뉴욕에서 사진으로 인정받은 한국작가로는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탓에 여기저기서 관심이 많은 듯. 보는 관점도 다양하고 평단의 반응도 그렇다. 영화스틸 컷 비슷한 형식, 미장센, 이런 방법이 신디 셔먼 이래 널리 퍼져 있어 뭐 새로울 것 있느냐, 이런 평가도 있고, 아시아 작가이기 때문에 뉴욕에서 ‘신기하게’ 봤다, 이런 시각으로 보는 글도 읽었는데, 글쎄다, 그런 관점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내용은 볼 것 없다, 이런 애긴가?  

니키리의 <프로젝트> 시리즈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뉴욕의 하류문화와 미국사회에서 배제된 집단을 부각시킴으로써 중심과 주변,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이라는 것, 전시장에서 받아온 팜플렛에 실린 평문도 대충 읽어보니 그런 내용이다. 뭐 그렇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 시리즈를 한데 모아 놓으니 맥락이 좀 달라지는 듯. 니키리의 프로젝트는 여러 개, 즉 복수다. 거기에는 여피도 있고, 히스패닉도 있고, 흑인, 스트립댄서, 아시아인, 레즈비언, 학생, 점원, 히피, 알콜중독자(정확하지 않다) 등 벼라별 잡종들이 다 있다. 그리고 꼼꼼히 살펴보면 아주 평범해 보이는 중산층도 있고, 상류층에 속해보이는 귀부인도 있다. 후자는 양적으로 많지 않은데다가 ‘기이한’ 집단들의 시각적 힘에 가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어쨌든 그들도 이 복수의 프로젝트에 속한다. 그렇다면 니키리의 작업은 미국의 하층계급, 비주류문화를 ‘고급예술’의 시야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미국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문명사적 관점’에서의 접근이랄까, 즉 미국이라는 문명은 한쪽에 이런저런 잡동사니 문화도 있고, 다른 쪽에는 ‘고상한 인간들’의 ‘우아한’ 문화도 있다, 이를테면 미국 전체를 보여주려는 게 아닌가 싶은데, 글쎄다.

 좌우간 그리 하려면 미국의 중간계급이나 ‘귀부인’이 속해 있는 문화 쪽 작업을 좀 더 보강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양도 적고 다양하지도 않아 양념으로 끼워 넣은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특수한 비주류 문화를 보여주는 사진은 고상한 갤러리나 미술관에 걸렸을 때 확실히 시각적인 힘이 세다. 반대로 상류계층의 문화를 보여주는 사진은 전시장 벽에 걸리면 힘이 약하다. 특히 이 둘이 섞여 있으면 더욱 그렇다. 당연히 관람자가 중간계급에 속하는 이들이라는 전제 하에서, 왜냐, 중간계급의 관점에서 보자면 원래 둘 다 ‘포토제닉’한 법이므로, 즉 중간계급은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므로. 그런데 전시장에서 소위 ‘작품’을 감상하는 중간계급은 이 상류층 문화란 것에 더 익숙한 모양이다. 혹은 닮고 싶어 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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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니키리

Dual Realities

전시 2011/04/09 23:43

한주 한주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정신 없는 와중에 마침 짬이 나서 한성필 개인전 <Dual Realities>를 보러갔다. 아라리오 갤러리, 처음 가보았는데 공간이 괜찮다. 이번 전시도 <파사드> 프로젝트의 연장인데, 조금씩 진화해나가고 있다. 이전 작업도 괜찮긴 하지만 뭐랄까, 레디메이드적인 요소도 있고, 좀 단순했었는데 이번에는 좀 복잡해졌다. 잠깐 대화를 나누어보니 다시점을 도입한 모양이다. 이전 작업들처럼 '눈속임'회화를 단지 기계적으로 복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점을 달리 하여 촬영한 각 부분을 정교하게 붙여놓았다. 한성필씨는 큐비즘적 요소를 사진에 도입했다는데, 눈에 잘 띄지는 않는다. 워낙 정교하다보니 설명을 듣지 않으면 눈치채기 어렵다. 하긴 그렇게 흔적을 덮어버리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흥미로운 부분은 베를린에 있는 맑스, 엥겔스 동상의 이전 작업에 대한 해석인데, 이게 일종의 메타포로 들어왔다. 신경을 많이 쓴 모습이 역력하고, 이걸 다른 작업에 대한 철학적 베이스로 끌어들이려는 것 같다. 공산주의가 무너진 오늘날 맑스/엥겔스의 동상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런 질문이다. 즉 공산주의는 사라진 역사인가, 아니면 자본주의라는 암초에 걸려 좌초된 선박인가, 혹은 수리가 끝나면 다시 항진할 수 있는 고장난 선박인가, 이런 질문이 되겠다. 원래의 동상을 촬영한 사진도 전시장에 있고 그 사진을 원형으로 삼아 복제해낸 동상도 전시장에 있다. 동상은 눈부신 빛에 둘러싸여 형태만 덩그라니 있다. 위치도 알 수 없고 방향도 알 수 없다. 하여 장소를 잃어버린 맑스/엥겔스를 상징한다 하겠다. 그들이 곧 좌표였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우상'으로 남지 않았느냐, 이런 질문을 던지는 셈이다.

맑스/엥겔스 사진과 다른 사진의 연계성을 생각해보면 연결고리가 좀 약하지 않은가 싶기도 한데, 제목이 'Dual Realities'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래도 일반 관객들은 좀 생뚱맞다는 인상을 받을 것 같다. 화려하고 현란한 자본주의 사회의 건축물과 맑스/엥겔스의 초라한 동상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이런 질문들이 나오지 않겠나 싶은데, 성상과 우상의 관계가 대답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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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한성필
한달에 한번 갈까 말까 한 인사동에 전시보러 갔다. 갤러리 룩스에서 하고 있는 권태균전. 권태균 선생의 사진에 70-80년대의 기록, 이런 수식어를 많이들 갖다붙이는데, 좀 식상하다. 50-60년대의 생활주의 리얼리즘 사진도 기록이라는 말로 확 정리가 되어버리는데, 이제 좀 정교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기록 아닌 사진이 어디 있나. 예술에 대한 강박관념을 갖고 있었던 과거의 사진가들은 기록이라는 말을 싫어했고, 기록에서 벗어나야 사진도 예술로 대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랫동안 기록의 가치를 폄하해 온 측면이 있다. 그런데 이제는 전세가 역전되었다. 모든 사진은 기록으로 통한다! 생활주의 리얼리즘을 했던 분들은 사진을 '예술'이라 생각하고 했었는데, 지금은 '기록'이라는 말로 정리들 하신다. 세월이 흐르면 기록의 힘이 커지는 법이니 이해는 간다.



그럼 권태균 선생의 사진은 기록이라는 말로 정리가 되나. 물론 기록이다. 이번에 전시된 사진이 주로 80년대에 찍은 거니 벌써 20-30년이 지났다. 그러니 기록이랄밖에, 그리고 모든 사진은 어쨌든 기록이므로. 그런데 기록의 원칙을 생각해보면 권태균의 사진은 그닥 '기록적'이지 않다. 기록의 대원칙에 가장 충실했던 사진은 미국의 HABS라고 생각하는데, 거기에 참여했던 사진가들 중에 '유명한' 사람은 없다. 시키는대로 정확하게 찍었고, 정보가치를 극대화시킨, 말 그대로 '자료사진'에 가깝다. 권태균은 소형카메라로 찍었지만 HABS는 대형카메라로 찍어서 정보량만 놓고 보면 비교가 안된다. HABS와 같은 시기의 FSA도 '충직한' 기록이라 할 수 있지만, 정작 핵심멤버였던 워커 에반스는 시키는대로 찍지 않았고, 시키는 것은 찍지 않았고, 시키지 않는 것만 찍었다. 그래도 워커 에반스의 사진은 '기록'이지만 꼼꼼히 생각해 보면 '기록'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구석이 있다.

좌우간 권태균의 사진에 기록이라는 말을 갖다붙인다고 해서 잘못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건 그 사진의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수식어이다. 기록이 중요했다면 다른 방식으로 찍었어야 했다. 권태균 선생은 35mm 소형카메라의 '미학'을 그 세대에서 아주 뛰어나게 체화하고 있는 양반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그게 까르띠에-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에 영향받은 바 크다. '결정적 순간', 이게 참 한 시대를 풍미하면서 신비화된 측면이 있다. 원래 까리띠에-브레송이 사진집을 낼 때의 불어 제목은 <Image a la sauvette>였는데, 이건 정직한 말이다. 굳이 우리말로 옮기자면 후다닥 찍은 사진, 이런 뜻이다. 그러니까 노점상들이 장사하고 있는데 단속나오니까 잽싸게 물건 팔고 도망가는 그런 순간쯤 되겠다. 여기에는 눈치채지 못하게, 은밀하게 붙잡은 이미지라는 의미가 섞여 있다. 직관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결정적 순간'이라는 제목의 의미는 영문판으로 내면서 과대포장된 측면이 있다. 하여 35mm소형카메라의 미학은 사실 '우연'이 반 이상을 차지한다. 권태균 선생의 사진에도 미처 본인이 눈치채지 못한, '은밀한' 무언가가 '우연히' 들어와 있을텐데, 까르띠에-브레송을 '학습했던' 사람들은 그 우연을 필연으로 둔갑시킨다. 뭐 원래 학습이란 것이 우연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법이니까 어쩔 수 없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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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ns

전시 2011/02/27 00:56
제3회 스코프 수상작가로 선정된 이선민의 <Twins>전을 보았다. 작업의 주제와 무게 중심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정작 본인은 잘 느끼지 못하는 듯. 그러다 보니 몇 가지 엉성한 부분이 눈에 띈다. 최봉림 선생이 쓴 평문의 제목이 "취미와 취향의 가족 사회학을 위하여"인데,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취향의 세습"이다. 아주 중요한 문제이고, 우리 사회의 자본주의가 서구식으로 진화되어 나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필연적인 과정을 콕 찝어서 보여주고 있어 예리하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오래 전에 상식이 된 문제이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잊어버리거나 알아도 모른 척 해버리는 그런 사안에 속한다. 부의 대물림이 경제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확장되어 가는 모습이라 할 수 있는데, 부르디외가 아비투스 개념을 통해서 줄곧 얘기해 왔던 바가 그것이다. 부르디외의 자본 개념은 맑스의 자본개념을 아주 넓게 확장시킨 것인데 여기에는 문화자본에서부터 학력자본, 인맥자본, 광범위한 상징자본 등이 포함된다.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제적 자본에 따라서만 계급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취향에 따라서도 구분된다. 이것이 이른바 상류 계급의 차별화 전략이다. "잘 사는 나는 고급 위스키를 마실테니까 못 사는 너는 소주나 마셔",  "베엠베 모는 나는 모닝 타는 너와 신분이 달라", 뭐 이런 얘기다. 그리고 실제로 부유한 계층이 누리는 문화와 중산층 이하의 계층이 누리는 문화는 엄청나게 다르다. 일반석도 기본 20만원씩은 되는 오페라를 아무나 관람할 수 있겠나.(값을 잘 모르지만 뭐 그 정도 하지 않겠나 싶다)  좌우간 부르디외는 <구별짓기>에서 이런 구분을 아주 세밀하게, 구체적으로 하고 있다. 어떤 직업의 사람들이 어떤 영화, 어떤 전시, 어떤 책을 주로 보는지, 한 달에 몇번 정도 보는지, 이렇게 통계자료를 들이민다. 물론 프랑스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 우리 실정과 정확히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좌우간, 이선민의 <Twins> 작업의 큰 줄기는 부모의 제안이나 강요, 혹은 자녀의 자발적 선택에 따라 부모와 자식의 문화적 취향이 닮아간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보여주는 방법에는 약간의 수사가 있다. 비슷한 옷을 입히거나(물론 본래 그렇게 입고 있을 수도 있지만), 비슷한 자세를 취하게 만들거나 한다. 그리 하지 않아도 원래 부모 자식은 닮는 법인데 그렇게까지 했으니 오죽 비슷해 보이겠나. 그런데 문제는 이런 '취향의 전수'라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당사자들의 자본(부르디외식의)에 크게 의존한다는 점이다. 요트를 취미로 할 수 있는 가족과 등산을 취미로 하는 가족의 자본은 아주 다르다. 카레이스나 승마를 취미로 하는 가족과 낚시를 취미로 하는 가족이 어떻게 비슷할 수 있겠나. 부르디외는 수잔 랭거를 인용하면서 "과거에 대중들은 예술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음악, 회화, 심지어는 책까지도 부유한 사람들만이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었다"고 언급하는데, 이건 어느 정도까지는 지금도 그렇다. 하여 <Twins>연작이 진정 '취향의 사회학'이 되려면 이 차이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취향의 대물림'이 계층별로 어떻게 다른지를 구분하지 않는다면 자칫 '위험한' 작업이 될 수 있다. 요컨대 '취향의 대물림'을 단지 부모의 자식사랑의 한 형태로 축소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 그 현상의 배후에 깔려있는 복잡한 메커니즘을 은폐시킬 수 있다는 것이 위험하다는 얘기다. 하여 중산층 이하, 혹은 빈민가정에서 '가난의 대물림'이 취향의 세습에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도 함께 보여줄 필요도 있고, 이를 계층별로 구분하여 제시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취향의 세습은 아주 아름답고 건전한 현상으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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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낙산

전시 2011/02/13 14:52
사간동에 약속이 있어 나갔다가 학고재에 들러 권부문 사진전 <산수&낙산>을 보았다. 디지털 팩을 사용하여 찍었다고 얘기 들었는데, 호, 사진의 물리적 퀄리티가 흡사 베허스쿨의 후계자들, 그러니까 토마스 스트루스나 구르스키의 사진을 보는 것 같다. 사진의 크기도 어떤 것은 전시장 벽면 전체를 꽉 채울 정도이다. 얼마 전 갤러리 현대에서 토마스 스트루스의 전시가 열렸는데(가보지는 못했지만), 바로 뒤이어 학고재에서 이런 전시가 열렸다. 그리고 그것도 국제적 명성이나 작품가격의 측면에서 스트루스와는 비교가 안되는 한국작가가 한국의 자연을 그에 못지 않은 퀄리티로 담아냈다. 마치 월드컵때 연봉이 몇백분의 일밖에 안되는 한국선수들이 유럽선수들과 싸워 이기거나 비긴, 그런 경우와 비슷하지 않나 싶다. 갤러리 현대가 학고재에 보기 좋게 한 방 먹은 셈이다. 통쾌하다고나 할까...



우선 들었던 생각은 그런 것이지만, 이런 사진을 보면 이제 기계에 대한 작가들의 의존도가 너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든다. 테크놀로지를 잘 이용할 필요가 있기는 하지만 이런 사진의 가치를 결정적인 핵심 요소는 이제 작가가 아니라 사진을 출력해내는 기술자들의 능력이다. 물론 어떤 톤에 맞출 것인가, 색상은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이런 것들을 결정하는 것은 사진가의 몫이지만 그걸 받쳐줄 수 있는 기술자들이 없다면 이런 사진은 불가능하다. 또 이런 대형프린트와 액자를 사용하여 전시를 하려면 그에 필요한 물질적 후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어쨌든 기계, 아니 테크놀로지의 비중이 과도하게 높은 작업을 보면 좀 그로테스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작업은 르네상스 후반의 마니에리즘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절정에 달한 이후에는 내려오는 속도도 엄청나게 빠른 법인데, 이런 사진은 때가 되면 금방 추락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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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피르와 친구들

전시 2011/01/12 01:22
아주 오랫만에 전시장 나들이를 했다. <델피르와 친구들>을 보러 예술의 전당에 갔는데,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예술의 전당이라는 곳은 정말이지 장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한다는 것, 또 하나는 사람들이 오죽 했으면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전시는 거의 대부분 줄서서 볼 정도로 '고급문화'에 목 말라있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주최측에서 사전 조사도 하고 광고, 마케팅, 이런 것도 신경써서 하기 때문이겠지만, 그간 한국의 전시 문화가 얼마나 허접했었나를 역으로 보여주는 현상인 것 같기도 하다. 한겨레 신문이 아주 작정하고 나선지 오래 됐는데, 아직까지는 잘 먹히고 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기도 하지만, 마인드가 좀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장사하려면 아예 까놓고 해도 될텐데, 장사꾼처럼 보이기는 싫고 그렇다고 밑지는 장사는 못하겠고, 어중간하다. 좀 밑지더라도 진짜 좋은 전시를 가져오던가, 아니면 자체적으로 좋은 기획을 하던가, 그럴 때도 되지 않았나싶다.

델피르, 이 양반이 당근 중요하기는 하다. 편집자로서 그만한 사람이 없고 사진가를 보는 안목도 높다. 물론 옆에서 코치를 해주었던 '진짜'가 따로 있지만, 그 '진짜'를 곁에 두고, 그의 말에 귀기울일 줄 아는 것도 일종의 안목이자 능력이다. 뭐 그 정도가 아닐까싶다. 저렴하게 좋은 전시를 들여오려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불란서에서 했던 전시를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안다. 그럼 어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럼 반대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때!,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델피르가 주인공인가, 그의 친구들이 주인공인가, 헷갈렸다.

한가지 생각거리가 생긴 것은 소득이다. 뭔고 하니 프린트의 문제인데, 이런 종류의 전시를 볼 때마다 나는 벽에 걸린 사진이 빈티지인가, 복제본인가를 따진다. 이번 전시는 마구 섞여있는 것 같다. 사진 하단에 정확한 표기가 없는 것을 보면 백퍼센트 복제본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별 문제가 없다, 는 것이 문제다. 복제본이라 해서 사진의 내용이 달라지나, 그건 아니다. 하여 편집자로서의 델피르에게 빈티지, 흔히 하는 말로 오리지널 프린트는 중요하지 않다. 사실 오리지널 프린트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난 잘 몰겠다. 하여 복제본을 걸어놓았다 해도 이 전시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책에 인쇄되어 실렸던 사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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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델피르

강홍구

전시 2010/09/06 00:58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약속이 있어 사간동에 갔다가 강홍구 사진전 <그 집>을 보았다. 전시하는 줄 모르고 있었으므로 우연히 보게 되었다. 강홍구 선생에 대해서는 호감도 있고 간혹 만나면 얘기도 나누지만 깊이 사귈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게 좀 아쉽다. 원래 그림을 그리던 분인데, 예전에 책도 한권 출간한 적이 있다. 잠깐 훑어보았던 바에 의하면 글도 재미나게 잘 쓰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번 전시는 흑백 사진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을 한 것이다. 우리 사회의 재개발, 뉴타운, 이런 문제들을 건드리고 있다. 재개발로 사라질 운명에 처한 집들을 '정직하게' 찍어 프린트를 하고 그 위에 물감으로 채색을 하여 본래의 집(현실)과 이미지 사이에 균열을 내는 전략인데, 특별히 새로울 것은 없다. 새롭지는 않지만 예술행위에 대한 근본적인 사색과 고민의 흔적이 있다. 사진은 허구적인 것도 사실적으로 믿게 만드는 주술적인 힘이 있다. 사진은 뭔가 "뻔뻔하고 공식적인" 데가 있어서 작가는 이것을 비틀기 위해 색칠을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면 심미적인 차원이 생겨난다. 여기에서 또 문제가 생긴다. 그 문제를 작가는 "끔찍한 현실이 심미적으로 보이는 것보다 잔인한 일은 없다"고 쓴다. 그 전형적인 예가 "빈집과 전쟁터와 폐허"이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의미가 생겨난다고 작가는 생각한다.

"미술이란 게 원래 환상에서 시작해서 환멸로 끝나는 것"이라는 말에서 궁지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작가의 고민이 보인다. 정치적 태도와 미학적 태도는 양립하기 어려운 것일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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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강홍구

워커 에반스전

전시 2010/08/22 22:57
오랫만에 전시장을 찾았다. 한미에서 열리는 워커 에반스전, 근래에 열렸던 사진전 중에서 단연 으뜸이라 할 수 있다. 워커 에반스전이 한국에서 처음 열렸다는 것은 의아스러운 일이다. 자칭 타칭 다큐멘터리 사진가라는 이들은 기이하게도 모범적인 외국 사진가로 워커 에반스를 거의 거론하지 않는다. 관심도 별로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는 여러 모로 의미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사진가이기도 해서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발걸음 가볍게 방이동까지 갔다.



그런데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전시 구성을 보니 과거에 서양에서 기획했던 전시 방식에 따라 사진이 걸려 있어 혼란스러웠다. 무슨 말인고 하니, 원래 워커 에반스가 편집했던 방식대로 사진이 배열되어 있지 않고 나중에 다른 기획자들이 편집한 방식에 따라 이번 전시가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제임스 에이지와 알라바마를 여행하면서 찍었던 사진을 "Let's now praise famous men"에 수록하면서 에반스는 사진의 순서와 배열에 세심한 주의를 쏟았다. "American Photographs"에 수록된 사진도 마찬가지이다. 그것들은 에반스가 미국을 문명사적 관점에서 해석한 서사시라 할 수 있으므로 사진의 순서와 배열이 달라지면 의미 또한 크게 바뀐다.

워커 에반스 전시가 여러번 있었던 서양의 경우 같은 전시를 되풀이 할 이유가 없으므로 전시 기획자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을 했을 텐데, 국내에서 처음 하는 전시라면 원래 워커 에반스의 관점에 따르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다. 미술관 측에서 그런 점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 좀 아쉽다.

에반스의 주요 작업은 거의 1930년대 후반에 나왔는데, 사실 이 시대는 포토 저널리즘이 황금기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그렇게 보면 에반스는 시대를 거꾸로 살았던 사람이다. 엉터리 전시가 많은 요즘 모처럼 볼만한 전시를 만났다. 듣자하니 그간 한미에서 열렸던 전시 중 가장 관람객이 많은 전시라 한다. 역시 사람들이 좋은 것은 귀신같이 알아보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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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

전시 2010/07/07 02:21
지난 6월 25일 대림미술관에서 오픈한 전시 <경계에서>, 국방부 주최로 10명의 사진가가 참여하였다. <6.25전쟁 60주년 기념사진전>이라는 부제가 붙어있고 사진심리학자 신수진이 기획했다.  전시는 괜찮다. 강운구, 주명덕과 같은 원로 작가에서부터 구본창, 오형근, 이갑철, 최광호로 이어지는 중견작가까지, 그리고 고명근, 난다, 원성원, 백승우에 이르기까지 아주 개성있는 작가들이 모여 다양한 관점들을 보여주고 있다. 역시 역량있는 작가들은 주제를 던져주면 훌륭하게 소화해 낸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다양한 작가들이 모여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큰 차이가 없는 작가들이 모인 전시라는 생각이 든다. 이 전시의 주제는 한국전쟁, 그러니까 분단 문제이다. 이 문제에 접근하는 시각에는 필연적으로 이데올로기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 한국전쟁을 어떻게 보느냐, 이 문제를 어떻게 이데올로기를 배제하고 해석할 수 있겠나. 이번 전시에 참여하지 않은 작가들 중에는 아주 오랫동안, 진지하게 분단 문제를 다루어 왔던 이들이 있다. 그런데 그런 작가들은 대개 '좌빨'로 분류된다. 아주 고질적인 병폐이지만 분단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작업을 해 왔던 이들은 '건전한 사상'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좌파로 인식된다. 그렇게 분류되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고 싫어하는 이들도 있다. 어쨌든 그러다 보니 이번 전시에 그런 좌파 사진가들은 빠졌다. 추정컨대 국방부 주최라는 점이 알게 모르게 작용했을 것이다.

사실 사진은 바보같아서 좌파적 시각에서 찍든 우파적 시각에서 찍든 아주 구체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관람자의 입장에서 쉽게 판단을 하기 어렵다. 좌파쪽 사진가들이 찍었다 할지라도 사진에 그런 시각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대림미술관과 가까운 류가헌에서 이상엽씨도 DMZ 사진전을 했는데, 자칭타칭 좌파 사진가인 이상엽씨의 사진은 아주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그래서 이 전시는 국방부 주최라서 조금이라도 사상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작가들은 사진과 상관없이 배제되었다고 본다. 전시의 질은 다른 문제이다. 하여 소위 '좌파'사진가들이 모여 분단 문제를 다룬 전시를 보여주는 것도 흥미롭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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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그림’으로 환생한 오브제 식물 

<마술적 리얼리티(Magical Reality)> 연작에서 현실의 생경한 모습을 찾아내 조형성을 부여하는 데 몰두해 왔던 구성수가 신작을 들고 나왔다. 일년생 식물을 마치 식물도감에서나 볼 수 있는 자료사진의 형식으로 촬영하여 모아놓은 <Photogenic Drawing>이 그것이다. 이 연작에서 작가가 끌어 모은 식물은 싸리와 고사리, 수선화, 목화에서부터 석위류, 눈꽃, 성유매, 향기별꽃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식물의 목록이나 사진의 형식을 고려하면 이 작업이 식물의 표본을 채집하여 그에 대한 지식의 체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꽃의 신전>에서 개별 식물의 특성을 그려내는 데 몰두했던 손턴(Robert Thornton)이나 방대한 양의 식물 표본을 채집하여 사진으로 자료화시켜 낸 칼 브로스펠트(Karl Blossfeldt)의 경우처럼 말이다. 구성수의 이번 작업도 이런 맥락에서 볼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뷔퐁의 <박물지>나 디드로의 <백과전서>와 달리 구성수의 <Photogenic Drawing>은 ‘지식’을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이는 작업의 메커니즘과 제목만 보아도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

우선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 작업의 메커니즘을 보자. 첫 번째 유형은 식물의 표본을 채취하여 말린 후 두 장의 유리판 사이에 끼워 넣고 뷰 박스 위에 올려놓은 상태에서 촬영한 것이다. 두 번째 유형은 찰흙에 식물 표본을 눌러 음각을 만들고, 여기에 백 시멘트를 부어 양각을 떠낸 후 그 위에 본래 식물의 모습에 가깝도록 채색을 하여 이를 다시 사진으로 촬영한 것이다. 음각과 양각, 채색의 3단계를 거쳐 탄생한 식물의 형상은 사진으로 귀결하는 셈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두 유형의 사진에 작가는 <Photogenic Drawing>이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이는 사진 발명가였던 영국인 탈보트의 용어이다. 탈보트의 식물 표본사진은 원래 음화로 제작된 것으로, 이를 원판으로 삼아 여러 장의 양화를 찍어낼 수 있는 사진 복제의 길이 열린다. 그런 점에서 구성수의 식물 표본사진은 탈보트의 사진에 대한 메타포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작가는 170년 전의 낡은 사진 개념을 지금에 와서 다시 문제 삼는 것일까?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놀라운 발전이 이루어 낸 변화무쌍한 사진 이미지의 생산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까?

 

아마도 작가는 170여 년 동안 급속히 변화해 온 기계적 이미지의 생산 조건과 그 변화가 야기한 사진 개념의 혼란에 대해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답을 구하려 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번 작업은 사진사에 대한 해석이자 사진 개념에 대한 작가의 입장 표명이기도 하다. 실상 현대미술을 이끌어 온 주요한 추동력 중의 하나가 예술 행위 자체에 대한 질문이었던 점을 염두에 두자면 구성수의 이번 작업은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질문에 대한 작가의 입장은 어떤 것인가? 

사진의 기원을 발명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찾아내려는 관점에서 보자면 사진은 15세기에 고안된 원근법적 시각을 기계적인 방식으로 완성시켜낸 이미지이다. 가시적인 세계를 관찰자의 시점에 따라 기하학적으로 배치하고자 하는 이 기획을 완성하는 데는 카메라 옵스쿠라와 같은 기계 장치의 도움이 있었다. 이 장치의 현대적 형태가 카메라이다. 카메라 옵스쿠라는 본래 과학적 지식을 찾아나가기 위한 도구였다. 16세기의 이른바 ‘자연 마술’에서부터 17세기의 자연철학에 이르기까지, 혹은 몇 세기를 거슬러 올라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 하에 있었던 스콜라 시대의 ‘자연학’이나 아랍철학자들의 과학 연구에서 이 도구는 자연 현상의 관찰에 이용되었다. 그런 점에서 사진에 대한 인류의 욕망은 관찰을 통해 세계에 대한 지식을 구축하고자 하는 욕망과 맞닿아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사진 발명자 중의 한 명인 탈보트 역시 어떤 점에서는 이러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던 서구 지식인의 전형이었다. 천문학과 수학, 광학에 정통했으며 50여 편에 이르는 과학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던 그는 후일 앗시리아의 설형문자를 해독해낸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진을 단지 중세의 자연학과 근대과학의 시대를 관통해 온 지식에 대한 욕망의 부산물로만 볼 수는 없다. 탈보트 스스로가 자신이 개발한 사진술에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도구라는 의미의 ‘칼로타입(Calotype)’이라는 이름을 붙였듯이 사진은 애초부터 자연의 경이에 대한 찬미의 언어로 등장한 것이기도 했다. 이제 아름다운 이미지는 연필 끝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상자 속에서 빛의 도움으로 얻어낼 수 있게 되었다. 자연은 스스로 자신의 신비를 그려낼 수 있는 도구를 갖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게 해서 화가는 자연을 아름답게 그려내야 하는 노동에의 의무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Photogenic Drawing>은 새로운 이미지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르네상스 회화의 종착지, 즉 그것의 완성이기도 하다.


이제 ‘자연의 연필’로 그려낸 구성수의 <Photogenic Drawing>이 어떤 구조를 하고 있는가를 보자. 말린 식물을 유리판 사이에 끼워 촬영한 첫 번째 유형은 고전적인 방법에 속하므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작가 스스로도 이 유형은 두 번째 유형을 위한 준비 정도로 생각하는 듯하다. 자연(실제 식물)을 찰흙에 눌러 만들어낸 음각과 거기에 백 시멘트를 부어 얻어낸 양각, 그 위의 채색을 하여 완성한 인공 식물은 최종적인 사진 이미지의 원형이다. 이처럼 복잡한 과정이 어째서 필요한 것일까. 여러 단계의 수작업을 거쳐 완성한 인공 식물이 자연 상태의 식물보다 낫다는 뜻일까.

자연 상태의 식물을 촬영한 첫 번째 유형과 비교를 해보면 이 차이를 엿볼 수 있다. 뷰 박스 아래에서 비추는 빛에 투영되어 반투명 상태로 조직을 드러낸 마른 잎들의 경우 표면의 디테일은 다소 훼손된 상태이다. 기계적 시각의 엄밀함과 정밀성을 추구해 온 작가에게 이런 결과는 다소 의외다. 따라서 그의 관심은 식물을 정교하게 재현하는 것 보다는 자연(식물)이 빛의 은총을 받아 저절로 자신의 형태를 드러내도록 놓아두는 데 있다. 두 번째 유형은 첫 번째에 비해 한결 정교해 보인다. 잎의 표면에서 번져나가는 초록색의 스펙트럼은 아주 넓고 줄기에 매달린 꽃의 모양과 색상의 순도도 매우 높다. 기기묘묘한 형태로 바탕에 파묻힌 줄기와 뿌리 또한 온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나아가 정면 약간 위쪽에서 떨어지는 조명이 만들어낸 그림자는 식물들의 형상에 입체감을 준다. 요컨대 첫 번째 유형이 평면적이라면 두 번째 유형은 그에 비해 입체적이다. 결국 이 인공식물을 촬영한 두 번째 유형의 사진은 자연 상태의 식물을 촬영한 것에 비해 시각적으로는 실재에 더 가깝다.

한편 부조와 채색 작업을 통해 얻어낸 모본은 그 자체로서 이미 고전적인 형태의 예술작품에 속한다. 하지만 구성수는 사진 촬영보다도 훨씬 고된 노동을 투자한 이 모본을 ‘작품’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그에게 이 ‘작품’은 완성본이 아니라 사진을 위한 ‘밑그림’ 정도로 간주될 뿐이다.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렸던 화가들에게 사진이 ‘밑그림’용으로 활용되었다면 이제 상황이 역전되는 셈이다. 이는 퍼포먼스 자체보다 퍼포먼스를 기록한 사진이 ‘작품’으로 등장하는, 결국 사진을 위해 퍼포먼스를 하는 현대 작가들의 논리와도 일맥상통한다. 물론 최종 작품으로 제시된 사진에 이 모든 과정은 생략되어 있지만 그 점이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빛으로 그린 그림”이 미술사의 맥락 속에서 차지하는 지위이다.

추정컨대 부조와 채색 과정을 거쳐 탄생한 오브제 식물은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 점에 연연하지 않고 이 ‘작품’을 촬영한 사진을 궁극적인 예술작품으로 제시하였다. 요컨대 그에게는 오브제를 만들어내는 섬세한 손보다 셔터를 누르는 침착한 손이, 형상을 빚어내기 위해 사물의 윤곽을 더듬는 눈보다 주어진 사물을 냉정하게 포착하는 기계적 눈이 더 요긴하다. 침착한 손과 기계의 눈이 지닌 가치를 변론하기 위해 작가는 섬세한 수작업을 투자한 후 결국 그것을 버렸다. 부질없는 노동이었다고 말할 것인가. 이미 170년 전에 영국인 탈보트는 동일한 가치를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그 가치의 정당성이 입증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구성수의 <Photogenic Drawing>은 그 가치를 재확인함으로써 정당화 담론이 종결된 지점에서 요구되는 사진의 화두가 무엇인가를 찾아나가는 시도이기도 하다.


(월간미술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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