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6.10. 시청 앞에 많이들 모였다, 고 들었다. 가지 못했으니 그렇게 말할밖에... 세상 소식에 귀 닫고 지내려하다가도, 우리 사회를 포기하는 수밖엔 달리 도리가 없다는 생각에 그냥 세상을 견뎌내며 살자고 마음먹었다가도 진정성을 갖고(그렇지 않은 이들, 예컨대 좌파적 관성에 젖어서 오는 이들도 많을 것이므로) 시청 앞으로 달려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포기는 아직 이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예전부터 갖고 있던 몇 가지 상념들을 정리도 할 겸해서 옮겨본다.
이념의 좌표가 사라진 지금 자칭 타칭 진보, 혹은 좌파에 속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지향하는 우리 사회의 미래형은 어떤 것일까. 우선 아주 소수의 근본적 좌파, 요컨대 여전한 사회주의자들이 있다. 나는 그들이 진정 부럽다. 신념을 갖지 못한 자들의 허약한 에너지에 비하면 그들의 삶은 밝고 건강하며 지난 삶과의 연속성을 지켜내고 있다는 점에서 유유하기까지 하다. 신념, 요컨대 믿음이란 믿음의 농도가 중요한 것이지 대상이 중요치는 않다. 인간은 때로, 자주, 혹은 언제나 믿음의 공백 상태에서 실의에 빠지게 마련이며, 심한 경우 생을 버리기까지 한다. 또한 진실만을 믿지는 않는 것이 인간이며, 필요하다면 거짓과 허구, 나아가 사악한 말까지도 믿는 것이 바로 그 인간, 믿음 없이 살 수 없는 그 인간이다. 따라서 문제는 믿음의 현실성에 걸려있다. 올바른 믿음, 올바른 신념이란 것이 어디엔가 있을 것이고,(그릇된 믿음이란 말과 비교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터) 현실성 없는 믿음은 자신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 세상을 위한 것은 아닐 것, 이라는 생각, 또한 신념을 갖고 사는 안이한 삶(편한 삶이 아니라)보다는 신념의 부재 속에서도 끝없이 고뇌하고 번민하는 부지런한 삶을 사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 훨씬 많아야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현실 사회주의는 실패했으므로...
두 번째로는 사회주의를 포기한 이들이 지향하는 우리 사회의 새로운 모델에 관한 문제. 이 표현이 나는 싫지만 그들이 어떤 모델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쓴다. 그 모델은 서구의 사민주의에 가까워보인다. 사회복지를 내세우는 진보신당이 그렇잖은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진보신당의 열성당원인 친구에게 상세히 물어봐야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서구자본주의가 이미 수 십 년 전에 어느 정도 모양새를 갖춘 그 모델을 지향하는 집단이 우리 사회의 가장 건전한 진보세력이라면 우리는 아직 멀었다. 다시 또 서양인가... 그렇게 당하고도 다시 또 배워야 한단 말인가. 진정 배워야 한다면 미워도 배워야 할 터. 나는 경제문제에 대해서는 젬병이며, 최근에야 겨우 인터넷 뱅킹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무식하지만(그것도 아내가 일러주어서야 알았다) 사민주의의 기초가 세금 문제에 걸려있다는 상식 정도는 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자와 빈자 사이의 갈등이 세금 문제에서 비롯되었으며, 모든 혁명의 발단이 거기에 있었음을 알면서도 자꾸 선거공약 정도로 축소시켜버리는 안이한 인식이 놀랍다. 그들 또한 낡은 신념 속에서 사는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머지는 말할 필요 없다.
아직도 야만과 싸우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하는 우리 사회, 갈 길이 멀다.
그러나 나는 그들보다 훨씬 더 안이하게 산다. 이 저질 지식인..., 아니 지식 노동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