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의 유명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가 방한하여 사진전을 열었다. 이번 방문은 그가 설립한 기어재단(The Gere Foundation)이 추진하고 있는 사회운동의 일환이라는 후문이다.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폐해와 인권 침해 사례를 고발하고 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한 공익적 활동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영화배우로 활동하면서 번 돈을 인류에 환원한다는 숭고한 목적이 있기에 방법을 떠나 일단은 반길 일이다. 그런데 리처드 기어의 이름 앞에 따라붙는 수식어 ‘유명 사진작가’라는 말이 왠지 걸린다. 그 말이 언론에서 별 의미 없이 갖다 붙인 단순한 수식어라 하더라도 말이다. 이번 전시의 목적에 공감하여 사진을 출품해 준 또 다른 ‘유명 사진작가’들도 상당수이다. 하지만 그들의 유명세와 리처드 기어의 유명세는 아주 다른 차원의 것이다.

국내의 명사(名士)들 중에서도 사진전을 열고, 작품집을 발간하여 ‘유명 사진작가’ 대접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들 중에는 유명 가수나 배우도 있고, 기업 총수도 있으며, 사회적 명망가나 각계 유력 인사도 있다.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전문가들도 있고, 평생 일만 하다 이제 ‘예술’에 눈 떠 다른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자 하는 교양인들도 있다. 심지어는 현직 대통령마저 은퇴 후에 ‘사진작가’가 되어 활동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사석에서 피력한 적도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사진작가는 명사들의 동경이라 하겠다. ‘사진작가’라는 직업 아닌 직업이 그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비치는 모양이다.

그들이 ‘사진작가’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이나 관념, ‘작가’ 활동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는 각기 다를 것이다. 리처드 기어처럼 공익적 목적을 위해 사진을 활용하고자 하는 이도 있을 테고, 소박하게 취미생활이나 여가활동을 위해 사진을 찍고자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좀 더 거창한 꿈을 갖고 ‘예술가’로 성공하고 싶은 이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런 편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두 ‘사진작가’에 대한 저마다의 환상을 갖고 있다. ‘사진작가’를 동경하는 그들의 욕망이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인간은 누구나 꿈을 꿀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꿈을 펼쳐나가려 할 때는 신중히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우선 왜 ‘사진작가’를 동경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시인이나 소설가도 있고 화가도 있는데, 왜 굳이 사진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가 말이다. 문인이나 화가는 부르디외식으로 표현하자면 장(場)의 위계가 높아 사진작가보다는 사회적으로 선망의 대상이 된다. 실제로 등단을 하지 않았다 뿐이지 직접 시를 쓰거나 소설을 쓰는 아마추어 문인들도 상당수에 이르며, 전시회를 하지 않아도 본래 재능이 뛰어나 그림을 잘 그려 선망의 대상이 되는 이들도 많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얼마 전 유명 래퍼가 펴낸 소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까지 올라가 일반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적도 있고, 유명 연예인들 중에는 정기적으로 그림 전람회를 개최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어쨌든 글을 잘 쓰거나 그림을 잘 그리기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오랜 훈련이 필요하고 게다가 재능까지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사진을 잘 찍기란 글이나 그림에 비해 한결 수월하다. 물론 시작 단계에서만 그렇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문인이나 화가가 되겠다는 꿈보다는 훨씬 현실적이다.

사진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사진술을 배우기가 쉽지 않았다. 필름을 직접 만들어 써야 했고, 카메라를 다루기도 어려웠으며, 필름에서 사진을 인화해 내는 공정도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는 건판 필름이 등장하고 나서야 촬영자가 직접 필름을 제조해야 하는 번거로움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또한 셔터만 누르면 나머지는 알아서 해준다는 코닥 카메라의 광고 문구는 누구나 사진작가가 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음을 알려주는 신호탄이었다. 실제로 코닥 카메라가 시판되는 1880년대 후반 이후에는 광범위한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사진작가’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후에도 사진의 기술적 진보는 계속되어 이런 경향은 가속화되었다. 디지털 기술의 시대가 도래 하면서 사진의 생산과 소비, 유통은 은염사진의 시대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간편해졌다. 이런 시대를 살면서 한번쯤 ‘사진작가’가 되기를 꿈꾸어보지 않는 것이 도리어 이상할 정도이다. 그런 점에서 명사들의 희망사항 또한 정당한 바람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바람의 귀결점이 어디냐에 있다.

사실 리처드 기어가 찍은 사진이나 그 전시에 작품을 출품해 준 유명 사진가들의 사진 사이에 시각적으로 큰 차이는 없다. ‘결정적 순간’의 신화를 만들어 낸 까르띠에-브레송의 사진을 운 좋게 누구라도 비슷하게 찍어낼 수 있으며, 현대미술 시장에서 고가에 팔리는 사진과 시각적으로 큰 차이가 없는 사진을 이제 막 ‘사진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일반인도 조금만 노력하여 모방하면 만들어낼 수 있다. 저명한 사진 콘테스트에서 입상한 ‘작품’과 무수히 많은 사진 동호회 게시판에 올라오는 사진들 사이에는 기실 큰 차이가 없다. 국내 유명작가가 찍은 사진과 무명의 작가지망생이 찍은 사진이 질적으로 아주 다른 것도 아니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유명한 작품사진을 보고 누구라도 ‘나도 저 정도는 찍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해서 하등 이상할 것 없다. 따라서 ‘나도 사진작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아주 자연스럽다 하겠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예컨대 누구나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다가 서명을 하여 전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 뒤샹이 그랬듯이 말이다. 어쩌면 뒤샹이 레디메이드로 제시한 병 걸이나 자전거바퀴, 소변기보다 훨씬 더 그럴듯한 물건을 뒤샹보다 더 유명한 사람이 전시장에 갖다놓을 수도 있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구겐하임 미술관에 어느 날 갑자기 백화점에서 구입한 물건을 갖다놓고 레디메이드 작업을 했다고 우긴다면 각종 언론에서 가만히 있겠는가 말이다. 그 경우 그들은 예술가인가? 물론 그들이 예술가가 아니라고 고집할 근거는 없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그들이 예술가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 또한 없다. 이럴 경우 단토라면 그들이 미술관에 갖다놓은 물건이 예술의 장(場) 속에서 무언가를 발언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들의 행위가 바로 그 장 속에서 의미를 부여받는다면 가치 있는 예술작품이라고 말할 것이다. 추정컨대 이 유명 인사들의 행위는 일거수일투족 언론의 주목을 끄는 까닭에 그들이 제시한 레디메이드 작업은 예술계에서조차도 비상한 관심을 보일 것임이 분명하다. 여기에서는 당연히 미술관이라는 예술제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미술관에서 그들의 작업을 수용했다면 이미 그들은 공인된 예술가라 할 수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질 리는 없겠지만, 비슷한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명사(名士)들의 사회활동은 주목받게 마련이다. 그들의 일상이 관심거리인데 전시회를 열거나 작품집을 출간하면 오죽하겠는가. 한 마디로 ‘뉴스거리’가 된다. 십 수 년씩 작가활동을 해도 언론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작가가 부지기수인데, ‘데뷔전’이 ‘뉴스’가 된다면 이는 불공평한 것이다. 물론 언론만 탓할 바는 아니다. 어쩌면 언론의 이런 반응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그것이 언론의 속성이니까. 대중들의 반응 또한 나무랄 것만은 아니다. 그것이 대중의 속성이므로. 오히려 문제는 명사들의 사진 활동에 대한 전문가 집단의 과민반응이다. 언론이 그리하는 것은 뉴스가치 때문이라고 이해하면 그 뿐이지만 전문가 집단이 부화뇌동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사진갤러리나, 전문 잡지, 작가, 평론가 등 사진문화를 가꾸어 나가는 이들이 냉정한 평가를 내릴 필요가 있다.

누구나 알아보는 명사가 아니더라도 사회 각 분야 유력인사들의 사진 활동 역시 눈길을 끌기는 마찬가지이다. 재력이 있거나 언론, 출판계에 영향력 있는 유력 인사들이 사진전을 열거나 작품집을 출간하면 상대적으로 주목받을 여지가 크다. 그리고 그렇게 전시를 몇 번 하고 나면 ‘사진작가’ 대접을 받는다. 이는 일반 사진애호가들 사이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취미, 여가 활동으로 시작했다가 연수가 쌓이고, 자신감이 붙고, 주변에서 칭찬도 받고, 간혹 공모전에 당선이라도 되면 그 때부터 ‘사진작가’로 통하는 것이다. ‘사진작가’라는 수식어가 그리 명예로운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호칭을 원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지적해야 할 점은 사진애호가, 즉 아마추어 작가들이 사진에 대해 취하는 태도이다. 문화 민주주의라는 이념이 일종의 공리(公利)처럼 인식되는 한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사진작가’가 될 수 있는 권리를 누구나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사진애호가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버리고 사진 작업에만 헌신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대개는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즉 그들은 ‘사진작가’라는 지위가 덤으로 따라올 때만 수용하려 한다. 물질적 안락함을 포기하면서까지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작업에만 몰두하는 작가들에게도 물질적 풍요에 대한 세속적인 욕망이 당연히 있다. 그들 역시 때로는 ‘작가’로서의 궁핍한 삶을 버리고 안정된 노동의 세계 속으로 편입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자기 직업을 버리면서까지 ‘사진작가’가 되기를 원치 않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처럼 그들 역시 ‘작가’이기를 그만두고 ‘직업인’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사진문화가 진행되어 온 역사를 보면 각 시기마다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역할이 있었다. 그들은 단지 향유의 권리만을 앞세웠던 단순한 문화 소비자가 아니라 진정으로 그 문화를 아끼고 이해했던 적극적인 문화 생산자이기도 했다. 사진술이 한국에 도입된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아마추어 사진가들은 한편으로는 방대한 문화 소비자층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사진언어의 생산자로서 이중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예를 들면 1920-30년대의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있다. 한국의 초창기 사진문화는 사진관에서 영업활동을 하던 사진사들이 주도해 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 시기의 직업사진사들은 사진을 주로 도구적으로 이용한 측면이 있다. 이런 관행과 결별하고 이른바 ‘예술사진’을 추구해 나갔던 이들 중에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고, 그들의 예술적 성취도는 매우 높았다.

등단이라는 제도가 없는 한국 사진문화의 관행에서 ‘사진작가’로 인정받는 길은 매우 제한되어 있었다. 일제강점기부터 존속해 왔던 공모전에서 입상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자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사진작가’라는 모호한 명칭 또한 국내 최대 규모의 공모전을 주최하는 <한국사진작가협회>에서 나왔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오늘날 이 제도는 점차 실효성을 상실해가고 있다. 공모전의 권위는 계속해서 실추되어가고 있으며, 작가협회 회원 수는 감소추세에 있다. 공모전 입상 또한 사진가로 활동하기에 내세울만한 스펙이 되지 못한다. 사진작가협회 주최의 공모전 외에도 수많은 다른 공모전이 있지만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현실에서 ‘사진작가’를 동경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인가?

그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사진작가상(像)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사회적으로 널리 인정받으면서 고상해 보이는 예술가상을 그리거나, 품격을 지키면서 작품도 잘 판매하는 유명 예술가상을 떠올릴 것이다. 전시회장에서 박수갈채도 받고, 대중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성공한 작가상, 그것이 모두가 원하는 바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채 궁핍을 감내하며 묵묵히 자기 세계를 완성해 나가는 작가들이 태반이다. 그들은 오직 자기 자신과 싸우면서 때로는 인류와, 때로는 세계와, 때로는 문명 전체와 한바탕 도박을 벌이고 있다. 그들의 노동에 어떤 보상이 따라올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들 역시 세속적으로 성공한 작가상을 그리고 있을 테지만 초초함을 지워버릴 만큼 ‘사진작가’라는 지위가 탄탄한 것은 아니다. ‘사진작가’를 동경하는 이들의 머릿속에 이런 작가상이 있는지 궁금하다. 결국 그들은 장밋빛 미래보다 어두운 현실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이는 현실적인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먼저 윤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황해문화 2011 가을호)

Posted by paixa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