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 서양이나 포토저널리스트들에게 주어진 상황은 좀 고약하다. 사진을 찍어도 싣겠다고 나서는 매체가 없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매체 환경이다. 전통적인 인쇄매체, 그러니까 신문, 잡지는 점점 디지털 매체의 확장과 더불어 위축되어가고 있다. 사진을 구매하던 인쇄매체가 위축되니 포토저널리스트들의 밥그릇이 작아지는 것이다. 이건 세계적인 현상이라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할 필요가 별로 없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매체 환경은 나빠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좋아진 것이다. 생각해 보라. 최초의 화보잡지가 나왔을 때는 망판인쇄도 없던 시절이어서 판각사들이 사진을 목판 위에 올려놓고 그대로 파내서 힘들게 인쇄했다. 전송도 없었다. 한 달에 한두 번 나오던 시절이었다. 포토저널리즘의 황금기, 라이프나 루크 때도 매체 환경은 지금에 비하면 아주 열악했다. 오죽했으면 로버트 카파 같은 다혈질이 <매그넘> 같은 에이전시를 만들자고 했겠나. 지금은 사진 찍기도 편하고, 현상 인화할 필요도 없고, 보정도 간편하고, 전송도 신속하고, 실시간으로 올렸다가 내릴 수 있고, 필름 값 걱정할 필요 없이 마구 찍어도 되고, 그야말로 매체환경 자체만 보자면 최고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 새로운 매체들은 사진을 구매하지 않을까. 필요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하지만 사진이 필요하지 않을 리가 없다. 인터넷 매체에 사진이 없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답답한가. 하여 사진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지금과 같은 사진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70년대에도 포토저널리즘의 위기가 있었다. TV와의 경쟁에서 인쇄매체가 밀렸기 때문이다. 하여 포토저널리즘은 그 시기부터 변했다. 그리고 살아남았다. 디지털 매체와의 경쟁에서 인쇄매체가 승리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여 인쇄매체에 집착하는 것은 무리다. 포토저널리즘을 고수하려면 디지털 매체환경에 적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다른 출구도 있지만...
다른 하나는, 당연히 매체환경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문제이지만, 포토저널리즘의 성격, 혹은 포토저널리스트들의 시각이다. 사람은 기계보다 여러 가지 부분에서 열등하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기계보다 열등한 부분을 이겨내려고 하는 건 아주 바보 같은 짓 아닌가. 기계가 못하는 걸 하려고 해야지 기계가 더 잘하는 걸 따라잡으려 하면 기계보다 바보라는 얘기다. 요즘 TV 뉴스를 보면 사건, 사고 보도에 CCTV 화면에 잡힌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아마 점차 이 CCTV가 포토저널리즘의 영역을 잠직해 들어가 공산이 크다. 이게 없던 시절에는 신문기자가 사건 현장에 가야했고, 비디오 카메라나 휴대폰 카메라가 널리 보급되던 때에는 사건 현장에 있던 익명의 대중이 신문기자의 역할을 대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람이 항상 사건현장에 있는 것은 아니며 항상 사진을 찍고 있는 것도 아니다. 반면 CCTV는 항상, 어디에서나 찍고 있다. 이제 사람이 ‘보도’할 일이 없다. 모든 사건 사고가 찍히고 있으므로. 하여 포토저널리스트들은 다른 궁리를 해야 한다. 뭘 찍어야 할까? 이렇게 질문하는 순간 모든 것은 공염불이 된다. ‘모든 것(everything)'이 찍히고 있는데 무엇을 찍겠나. 따라서 무엇을 찍을까, 이런 고민이 아니라 어떻게, 왜 찍을까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 그리 하지 않으면 기계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