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예술가를 가장 좋아하느냐는 호사가들의 질문에 나는 주저없이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오, 라고 대답한다. 다른 종류의 질문, 예컨대 어떤 가수를 가장 좋아하느냐, 어떤 영화를 가장 좋아하느냐, 하는 류의 질문에는 대답할 말이 없지만 이 질문에 만큼은 답을 갖고 있는 것이다. 물론 좋아하는 다른 예술가들도 많다. 마네는 내게 특별하며, 암스테르담의 고호 뮤지엄에서 보았던 그의 원작들은 '너무 유명해서' 일부러 싫어하려고 노력했던 내가 얼마나 유치한 사람이었는가를 깨닫게 해주었으며, 귀스타브 모로는 정말이지 색상 하나하나가 보석처럼 반짝거려 화려함의 극치가 무엇인가를 알게 해주었으며(화려함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 알았다), 플랑드르 회화의 엄밀함(바젤에서 보았던 듯, 잘 기억나지 않는다)에 대한 나의 호감은 시간이 갈수록 커간다. 하지만 뒤샹은 전혀 다른 측면에서 아주 특별한 예술가이다.
어떤 예술을 할 것인가, 어떤 작품을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보다도 예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예술가가 만나게 되는 최초의 질문을 가장 진지하게 던진 자가 바로 그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진부하다 못해 헛웃음까지 나오게 만드는 이 우스운 질문, 어쩌면 유치하고 또 어쩌면 암담한 질문, 그러나 거기에 화답하려는 시도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예술을 시작조차 할 수 없는 질문, 자신이 예술가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을 작품의 내용으로 끌어들인 본격적인 예술가, 그가 뒤샹이다. 이 사람으로 인해, 이 사람이 던져놓은 곤혹스런 질문 앞에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이 난처해 했는지, 또 얼마나 현대예술의 성격이 크게 변화했는지는 책 보면 다 나온다. 물론 거기에는 확대해석도 있고 축소해석도 있으며, 당연히 엉터리 해석도 있다. 따라서 가장 좋은 길은 뒤샹에게 직접 다가가는 것이다. 뒤샹의 말을 직접 들을 수 있는 대담이 몇 개 있으며(피에르 카반과의 대화, 제임스 스위니와의 인터뷰 2편, 앞의 것은 번역본도 있다), 뒤샹이 직접 쓴 작업노트와 에세이집도 있다. 뒤샹의 작업노트는 플라마리옹에서 <Duchamp du Signe>라는 제목으로 묶여 출판된 지 오래 되었으나 뒤샹 연구자들은 그것을 별로 참조하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물론 어렵긴 하다. 그래도 뒤샹 연구자라면 읽어야 하지 않을까(나는 뒤샹을 좋아하는 사람이지 뒤샹 연구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또한 뒤샹을 가장 잘 이해했다고 평가받는 리오타르의 <Transformer, Duchamp>(원래 불어판은 값이 싼데, 영문판은 장사꾼들이 너무 크게, 비싸게 만들어놨다)도 읽어볼 만하다.
어쨌든, 재미삼아 레디메이드에 대한 뒤샹의 발언을 정리해 본다. 알다시피 뒤샹은 BHV(프랑스의 대중 백화점)에서 갖가지 물건들(병걸이, 의자, 다리미, 변기 등)을 구입하여 싸인한 후 '작품'으로 전시했다.(그 중에는 싸인하지 않은 것도 있다. 따라서 서명을 통해 예술작품이 아닌 것을 예술작품으로 변환시킨다는 해석은 과장이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그의 작품은 예술가의 손재주, 즉 기예의 산물이 아니라 선택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초이스가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어떤 초이스인가? 뒤샹은 말한다. 그 선택은 취향의 부재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요컨대 뒤샹 자신의 취향을 배제한 상태에서 선택한다는 것이다. 하여 말하자면, 자기가 오브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오브제가 자기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기이한 발상... 우리는 보통 식당에서 메뉴를 선택할 때도 자기 취향을 따르고, 옷이나 신발, 휴대폰 등 모든 물건들을 자기 취향에 따라 택한다. 생각을 바꾸기는 쉬워도 취향을 바꾸기는 어렵다. 나아가 취향을 배제한 상태에서 행위를 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런데 그는 '작품'을 선택할 때 힘들게 취향을 빼내려 애쓴다. 그가 평생동안 제작한(혹은 선택한) 레디메이드는 17개(14개였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냥 수퍼마켙 가서 사오면 될 터인데 말이다. 물론 평생이라 해도 근 20년 동안 예술계를 떠나있었으니(그 동안 그는 체스에 미쳐있었다. 세계 체스선수권대회에도 출전했으나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정말 일평생을 작업에 바쳤던 다른 예술가들에 비하면야... 그래도 그는 20년 후 <Etant donne>라는 대작을 갖고 나왔다. 체스만 두지는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이런 기묘한 선택을 두고 뒤샹은 다시 그것이 '랑데부(Rendez-vous)'라고 말한다. 자신과 오브제와의 약속, 혹은 만남, 레이메이드는 그렇게 약속의 산물이다. 한 편에 일방적이지 않은 만남, 약속이란 그런 것이다. 예술가의 편에서 일방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오브제를 만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그 역도 마찬가지. 진정한 만남은 그래서 기다리는 것, 만날 준비가 될 때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