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고은사진미술관에서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상황”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했다. 발제문은 분량이 너무 길어 올리지 않고 간략하게 요점만 정리해 본다. 첫째, 다큐멘터리 사진은 장르가 아니라 스타일 혹은 형식이다. 둘째 다큐멘터리는 1930년대에 등장한 역사적 개념이자 모순적인 개념, 하여 다큐멘터리 사진이라는 표현은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부적절한 용어이다. 하지만 이미 이 표현 자체가 일반화되어 있으므로 사용은 하되 개념 정의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셋째, 다큐멘터리 사진은 사진 기록물, 즉 자료사진과 다르며 저널리즘 사진과도 다르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은 사진의 역사 속에서 늘 아방가르드의 위치에 서있었으며 사진의 문법과 형식, 이런 측면에서 시각적 혁신을 주도해 왔다. 1930년대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은 계몽주의의 후예이며 사진이 사회비판과 개혁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자들이다. 저널리즘 사진에서는 아주 엄밀하게 말하여 사진가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또한 거기에는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가 중요하지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는 상대적으로 중요치 않다. 저널의 독자들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주도해 왔던 ‘시각적 혁신’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하지 않으며, 관심도 없다. 이미 보편화되어 있는 사진이미지의 문법과 형식이 저널리즘에서는 계속해서 재생산되지만 다큐멘터리 사진은 그것을 넘어서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다큐멘터리는 끊임없이 시대에 맞는 적합한 형식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편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흐름을 아주 거칠게 정리하자면,
우선 1950년대의 '생활주의 리얼리즘'은 ‘기록’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적 의미에서의 다큐멘터리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우선 리얼리즘 사진가들은 공모전을 통해 자신의 사진을 ‘작품’으로 인정받기를 원했다. 공모전은 입상작을 가려내기 위한 기준이 필요하고, 따라서 ‘작품’으로 인정된 ‘기록’사진은 그 평가의 기준에 따라 정형성을 띨 수밖에 없었다. 조금 과장하여 말하자면 1950-60년대의 리얼리즘 사진은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정형성을 갖고 있으며, 내용의 측면에서는 전후 한국사회의 궁핍한 생활상을 담아낸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리얼리즘 사진이 가졌던 이러한 한계는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를 거치면서 극복된다. 이를 실행해 나간 이들은 강운구, 주명덕의 경우처럼 본격적인 의미에서 다큐멘터리적인 방법론을 끌어들인 사진가들이다. 이후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다큐멘터리 사진은 내용이나 형식의 측면 모두에서 좀 더 다양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에서는 70년대 문제의식의 연장선에서 근대화의 부정성에 천착하여 전통의 가치를 찾아나가는 경우(이갑철)도 있고, 한국현대사의 첨예한 갈등구조인 분단의 문제에 몰두하는 경우(강용석)도 있으며, 개인사를 보편적 현실로 환원시켜 내는 경우(최광호, 이상일)도 있었다. 방법의 측면에서도 이들은 저널리즘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장기적인 기획 하에 개인적으로 작업을 해나갔다. 한편 이들의 사진이 저널리즘 사진과 갖는 차별성은 몇 가지의 관점에서 정리될 수 있다. 우선 이들은 양질의 인화를 중요시 여겼으며, 그것은 곧 사진이 ‘예술작품’으로서의 위상을 지닐 수 있는 자격을 의미했다. 이는 서양식 모더니즘의 유산이지만, 사진이 미술관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소장’ 가치를 판단하는 매우 중요한 척도이기도 하다. 그것 없이 사진은 정보가치만으로 지위가 결정되는 복제 이미지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신문, 잡지에 실릴 수 있을 정도의 ‘적당한’ 품질만 된다면 큰 문제가 없는 저널리즘 사진과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또한 이들은 자신들의 작업에 서사구조를 포함시켜 각각의 사진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큰 주제 하에 모여들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고루한 예술전통은 이들의 사진 작업이 갖는 가치를 온당하게 인식할 수 없었다. 우선 미술관을 비롯한 각종 예술제도는 오랫동안 사진을 복제 이미지 정도로만 생각해 왔고, 양질의 인화를 감별해 낼 수 있는 안목조차 없었다. 서양의 미술관들이 사진을 ‘예술작품’으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중요한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던 데 비해, 우리의 경우는 판단 능력조차도 없었던 셈이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사진의 가치를 판단할 때 정보가치에만 의존하는 태도, 즉 무엇이 찍혀있는가를 가지고 사진의 가치를 결정하는 태도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는 곧 한국의 예술제도 전체가 사진을 ‘읽어내는’ 독해의 수준이 매우 낮음을 반증한다. 1970년대의 주명덕, 강운구가 확립시켜 놓은 절제된 문법, 이갑철의 역동적 프레임, 강용석의 중성 톤, 그밖에 다양한 형태의 카메라 워크를 통한 수사 및 공간의 기술(記述)들이 갖는 중요성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문제를 제도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후속 세대에 속하는 사진가들 또한 다큐멘터리의 가치를 관념적으로만 받아들일 뿐 그것을 실행해 옮기는 경우는 많지 않다. 다른 한편으로 ‘사회적 다큐멘터리’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진가들의 상당수는 저널리즘적인 소통에 집착하여 조급하게 수사에만 매달린다. 그들은 인쇄매체의 쇠퇴가 곧 다큐멘터리의 위축을 가져왔다는 안이한 인식에 사로잡혀있기도 하다. 한국 현대사진의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노순택의 작업은 주목할 만하다. 2000년대 이후 꾸준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분단 상황과 관련한 한국현대사의 근원적인 갈등구조 및 다양한 사회적 폭력의 문제를 들추어내고 있다. 현실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이 그의 작업을 이끌어가는 추동력임은 말할 나위 없으며, 이는 ‘사회적 다큐멘터리’의 역사적, 개념적 정의에 비추어 보아도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점은 소통의 방법론에 대한 모색이다. 그의 작업에서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고전적인 문법구조와 형식이 확장되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 시대의 현실은 다큐멘터리 사진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요구에 화답하고자 하는 시도는 그리 많지 않으며, 때로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경우도 많다.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 못지않게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하는 방법적 고민이 함께 필요한 시점이다. 그것이 곧 다큐멘터리 사진의 핵심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것 없이 현실은 깊은 침묵 속에 빠져들 것이며, 다큐멘터리 사진은 그 침묵의 폭력으로부터 현실을 지켜내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