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

잡글 2011/12/19 23:16
부모로부터 양질의 신체를 물려받았다고 여기는 터라 운동선수들만큼은 아니지만 기초 체력에 자신감을 갖고 있었는데, 호, 나이가 들어가니 여지없다. 요 근래 몇 달 체력 저하에서 비롯된 면역력 저하로 각종 질병에 시달리다보니 몸은 쓰면 닳아지는 물질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상,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게 되는 현상, 허나 자연스러워 별다른 이의 없이 그저 그러려니 하고 체념하거나 이를 연기시키기 위해 운동이나 영양제 복용으로 그에 반항하는 그런 현상, 어찌해야 하나 싶다. 한번도 술담배를 끊겠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는데, 한번 고려도 해보고, 운동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고, 참 별 생각을 다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우리 할머니는 내 나이 때 이미 '할머니'였는데, 신체 나이가 자꾸 연기되다보니 젊은 체 하게 된다는 생각도 든다. 좌우간,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 즉 자신을 속이지 못한다는 것, 다만 정신이 주인이라 자청하는 '나'만 모르고 있다는 것. 그리 보면 몸만 우둔한 게 아니라 의식 또한 우둔하기 짝이없다. 저자가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시인이 '젊음을 탕진한 죄'라 썼던 대목이 생각난다. 맥락은 다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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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테크놀로지는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시대의 문화지형을 빠른 속도로 변화시켜 왔다. 이 테크놀로지에 기초한 문화는 이제 기계 마니아들만이 향유하는 특수한 문화가 아니라 우리 시대 전체의 문화로 확산되었다. 바야흐로 디지털 문화의 시대가 열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터넷과 스마트폰, 아이패드 등 디지털 문화를 이끌어 나가는 하드, 소프트 웨어의 영역에서 사진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사진 없는 디지털 문화란 상상하기 어렵다.

여기에는 사진이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통해 아주 쉽게 생산, 유통될 수 있다는 점이 주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누구나 디지털 카메라로 원하는 사진을 찍어 파일 상태로 보관할 수 있으며, 마음에 드는 사진을 타인과 주고받을 수 있다. 인터넷의 가상공간에 그 사진을 올려 대량으로 유통시킬 수도 있으며, 타인의 사진을 함께 공유할 수도 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클릭 한번으로 사진을 제거해 버릴 수도 있고, 마음이 바뀌면 다시 환생시켜낼 수도 있다. 손오공의 마법처럼 같은 사진을 대번에 여러 장 복제해낼 수도 있고, 크기를 마음대로 키우거나 줄일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원본(데이터로 존재하는)의 품질은 전혀 훼손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사진의 생산과 유통에 미친 영향은 다양한 각도에서 검토해 볼 사안이지만, 우선 복제의 측면에서 생겨난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벤야민이 사진 복제가 가져온 문화사적 변화에 대해 언급하는 대목과 관련하여 다시금 우리 시대의 복제문화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지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디지털 복제는 기존의 아날로그적 사진 복제와 질적으로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일상에서부터 예술작품의 생산과 수용, 특히 예술로서의 사진에 이르기까지 주목할 만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먼저 아날로그 시대의 사진 복제가 어떤 형태로 이루어져 왔는지 살펴보자. 최초의 복제 시스템을 고안했던 이는 영국인 탈보트이다. 탈보트보다 먼저 사진술 발명자라는 영예로운 지위를 얻었던 이는 니에프스의 연구를 발전시킨 다게르였지만, 그가 고안했던 다게레오타입은 복제가 불가능했다. 반면 탈보트의 칼로타입은 종이원판에서 여러 장의 사진인화를 복제해 낼 수 있어 오늘날의 사진 복제시스템을 처음 실현시킨 방법이었다. 그런데 칼로타입은 불투명환 종이원판을 사용하는 까닭에 신속하게 복제를 해내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복제를 계속해낼 때마다 종이원판이 훼손되어 복제할 수 있는 양에도 한계가 있었다. 칼로타입의 복제력이 비약적으로 증대된 것은 두 가지의 기술적인 개량 덕분에 가능했다. 공식적으로는 1851년에 개발된 밀랍지법과 알부민법이다. 전자는 종이원판에 밀랍을 입혀 종이의 공기구멍을 막아 이미지의 선명도를 높이고 원판의 표면에 견고성을 부여했다. 후자는 감광도를 높여 한 장의 원판에서 하루 500장 정도의 인화가 가능하도록 했다. 알부민 인화는 초기의 칼로타입이 지녔던 복제력에 비하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이지만 이를 두고 벤야민이 언급한 전시가치가 대번에 실현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전히 복제의 양에는 제약이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무한복제가 가능해진 것은 사진인쇄, 특히 망판인쇄술이 보급되면서부터이다. 이전에도 사진인쇄는 가능했지만 활자와 함께 인쇄할 수 없어 실용화에 이르지는 못했다. 반면 활자와 사진을 동일지면에 인쇄할 수 있는 망판인쇄가 등장하면서 사진은 세계를 뒤덮게 되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사진을 볼 수 있는 세상, 역으로 말하자면 어디를 가더라도 사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세상, 그야말로 사진의 편재(遍在)가 시작된 것이다. 벤야민이 언급한 기술복제 시대는 바로 이처럼 사진의 무한복제와 더불어 열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무한복제에도 한계는 있다. 우선 사진의 생산자, 그리고 그 사진을 복제하는 주체가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감광도가 높은 건판필름과 자동카메라는 사진의 생산자 층을 잠재적으로 광범위하게 넓혀놓았지만 복제를 통해 만나게 되는 사진의 생산자는 여전히 특별한소수였다. 이는 복제의 주체가 일반 대중이 아니라 매체였기 때문이다. 즉 한 장의 사진은 그 사진을 활용하고자 하는 매체의 방침과 부합할 때만 복제될 수 있었다. 요컨대 복제 가치가 있는 사진을 찍은 자만이 사진의 진정한 생산자일 수 있었다. 그렇지 않은 경우 사진은 사진가의 손을 떠날 수도, 복제될 수도 없으며, 결국 그 사진가는 사진의 생산자일 수 없었다. 둘째, 복제된 사진 이미지의 수용자는 단지 수용자일 뿐, 그 사진을 다시 복제해낼 수 없었다. 물론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사진을 카메라로 다시 찍어 복제해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을 복제라고 하기는 어렵다. 복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가 곧 현실의 피사체를 촬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복제 이미지의 품질이 원본보다 못하다면 복제 행위는 훨씬 쉽고 간편해야 한다. 그래야 복제의 가치가 생긴다. 하지만 이 경우 촬영 행위와 복제 행위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셋째, 촬영을 통해 얻어낸 복제 이미지는 원래의 원본에 비해 품질이 낮다. 이 차이가 아무리 미세하다 할지라도 물리적인 차이는 반드시 발생한다. 아날로그 방식이기 때문이다. 즉 아날로그는 유사를 속성으로 삼고 있는 탓에 반드시 원본과 다르다. 복제가 거듭될 때마다 품질은 낮아져 원본이 갖고 있는 정보는 상당 부분 훼손되는 것이다.

한편 디지털 복제는 아날로그 방식의 복제가 갖고 있는 이런 단점을 대부분 극복할 수 있다. 먼저 품질의 문제. 아날로그 복제에는 원본이 있다. 복제를 가능케 하는 무엇, 즉 복제가 시작되는 지점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다. 복제물과 원본의 차이가 거의 없더라도 복제의 대상은 있는 것이다. 사진 복제의 경우 필름이 원본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디지털 복제의 경우는 원본과 복제본의 물리적 차이 없이 무한 복제가 이루어진다. 때로 복제본이 원본이 되기도 한다. 이는 디지털 사진의 원본이 이미지가 아니라 데이터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미지는 유사를 토대로 하지만 데이터는 숫자를 근간으로 삼는다. 숫자는 유사를 배제하므로 조금만 달라져도 다른 데이터, 즉 다른 이미지가 된다. 따라서 데이터 상태로 복제되는 디지털 이미지는 원본과 복제의 구분이 없다. 결국 디지털 복제의 경우 모든 복제본의 품질은 동일하다. 둘째, 디지털 사진의 생산자, 그리고 그 사진을 복제하는 주체는 특권을 부여받은 자들이 아니다. 이 문제는 결국 이미지의 유통과 긴밀히 연계되어있다. 아날로그의 경우 복제 가치가 있는 사진은 한정되어 있으며, 복제의 주체 또한 그렇다. 사진 복제에는 일정한 시간과 경비가 소요되므로 복제할 사진은 소수로 한정된다. 즉 복제의 목적이 분명할 경우에만 복제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디지털 복제의 경우는 시간도, 경비도 필요치 않다. 또한 거기에는 특별한 목적이 없다. 디지털 복제는 오히려 유희적이다. 누구나 특별한 목적 없이 사진 복제를 행하는 것이다. 이제 복제는 정치적, 사회적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유희를 위한 것이 되었다. 복제 본을 만들었다가 언제라도 파기할 수 있고, 다시 또 복제해 낼 수 있는 것이 오늘날의 복제문화이다. 셋째, 디지털 복제는 모든 정보를 사진이미지로 환원시켜낸다. 원본이 사진인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그림이나 만화, 심지어는 문자 텍스트마저도 사진 복제라는 매개를 거쳐야만 정보가 된다. 즉 우리가 디지털 복제를 통해 접하는 모든 정보는 사진을 기본 단위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플루서가 선형문자라 불렀던 것마저도 기술 이미지로 변환시켜 정보로 받아들인다. 그야말로 디지털 복제가 창궐하는 시대이다.

이런 조건에서 예술작품, 특히 사진은 다시 한 번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변화는 매우 복잡하게, 그리고 불명료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우선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문제들 몇 가지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우선 처음으로 사진 복제의 문제를 언급한 벤야민을 따라 디지털 복제 시대의 전시가치에 대해 살펴보자. 이 문제는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첫째, ‘사진작품이 전시장에서 관객과 만나는 경우와 둘째, 이 작품이 복제 이미지로 가상공간에서 유통되는 경우이다. 첫 번째 경우 사진작품은 여전히 전시가치보다는 제의가치에 묶여있다. 사실 전시장에 입성하는 사진작품은 대부분 디지털 방식으로 출력되어 벽에 걸린다. 그런 점에서 이 사진들은 첨단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단지 인화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결국 아날로그 방식과 근본적으로 유사하다. 여전히 전시장이라는 공간의 특별한 의미에 집착하고 있으며, 결국 전시가치를 위한 공간이 제의가치에 매달려 있다 하겠다. 왜냐하면 미술관이나 상업갤러리에 전시된 사진은 관람자에게 복제품이 주지 못하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해야 하며, 그 경험은 바로 그 장소에서만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설혹 그 작품전시가치가 있더라도 전시장을 찾는 이들의 수는 제한적이어서 무한복제를 통해 증폭하는 이미지들의 전시가치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미술관을 통해 유통되는 사진작품들이 전시가치를 극대화시키려면 전시장을 버리고 복제이미지에 의존하여 가상공간을 배회해야만 하는가? 이 경우 사이버 갤러리의 가능성이 아직 남아있다.

두 번째의 경우, 복제된 사진작품은 무수히 많은 불특정 다수의 관람자와 만날 수 있다. 그야말로 전시가치가 극대화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 복제 이미지들은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진짜 작품에 비하면 품질이 훨씬 낮다. 따라서 심미적 체험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 복제 이미지들이 제공하는 경험의 두께는 매우 얇은 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품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개의 관람자들은 전시장 벽에 걸린 사진작품사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로 받아들인다. ‘사물이 제공하는 미세한 결을 감각적으로 더듬어나가면서 풍요로운 체험으로 확장시키기보다는 무엇이 찍혔는지, 사진가는 그것을 왜 찍었는지, 그 이미지는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는 말이다. 이 경우 사진의 물리적 품질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인터넷의 가상공간에서 볼 수 있는 복제이미지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많은 사진작품들이 저용량 디지털 데이터로 복제되어 가상공간을 둥둥 떠다니고 있다. 전시홍보용으로 신문, 잡지, 인터넷 매체에 제공한 데이터나 그 밖의 목적으로 만들어낸 디지털 이미지가 불특정 다수의 관람자들 사이에서 무한 복제되는 것이다. 이런 복제에는 기원도 없고, 원본도 없으며, 말하자면 복제본도 없다. 서로가 서로를 복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제의 목적 또한 없다. 단지 복제를 위한 복제, 혹은 유희로서의 복제일 뿐이다. ‘전시가치유희가치로 옮겨간다 하겠다.

디지털 복제가 야기한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복제의 원본이 되는 사진의 물질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아날로그 시대의 사진가들은 복제 이미지(오리지널 프린트라 불리는)를 필름이라는 물질로부터 얻어냈다. 그 물질의 권위는 확고부동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 없이 오리지널 프린트라는 또 다른 물질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바로 이 후자로서의 물질(복제품)이 원본으로서의 물질(필름)을 압도한다는 것이다. 원본으로서의 물질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서 자산가치가 높은 복제품으로서의 물질을 얻어낼 수 있는 한에서였다. 그런데 이제 이 원본으로서의 물질은 디지털 데이터에 자리를 넘겨주고 있다. 사진가들이 오리지널 프린트라는 복제품을 만들어낼 때의 원본은 디지털 데이터이다. 디지털 팩을 사용하여 애초부터 데이터 상태로 시작하거나, 필름으로 촬영하여 그것을 다시 디지털 스캔하여 데이터로 변환시키기 때문이다. 즉 디지털로 출력한 모든 사진들의 원본은 물질성이 없는 디지털 데이터이다.

위에서 살펴본 몇 가지 현상들은 비록 징후에 불과하지만 예술작품의 생산과 유통, 보존 등 다양한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이 변화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 것인지는 성급히 예단할 수 없다. 다만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진화가 무섭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이 일상에서부터 대중문화, 예술의 지형과 생태계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 또한 그렇다. 디지털 복제는 아날로그 사진 복제나 기술 이미지의 등장이 야기한 변화 못지않게 큰 지각변동을 가져 올수도 있다. 어쩌면 그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거나 진행 중인지도 모르겠다.

계간 황해문화 2011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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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의 유명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가 방한하여 사진전을 열었다. 이번 방문은 그가 설립한 기어재단(The Gere Foundation)이 추진하고 있는 사회운동의 일환이라는 후문이다.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폐해와 인권 침해 사례를 고발하고 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한 공익적 활동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영화배우로 활동하면서 번 돈을 인류에 환원한다는 숭고한 목적이 있기에 방법을 떠나 일단은 반길 일이다. 그런데 리처드 기어의 이름 앞에 따라붙는 수식어 ‘유명 사진작가’라는 말이 왠지 걸린다. 그 말이 언론에서 별 의미 없이 갖다 붙인 단순한 수식어라 하더라도 말이다. 이번 전시의 목적에 공감하여 사진을 출품해 준 또 다른 ‘유명 사진작가’들도 상당수이다. 하지만 그들의 유명세와 리처드 기어의 유명세는 아주 다른 차원의 것이다.

국내의 명사(名士)들 중에서도 사진전을 열고, 작품집을 발간하여 ‘유명 사진작가’ 대접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들 중에는 유명 가수나 배우도 있고, 기업 총수도 있으며, 사회적 명망가나 각계 유력 인사도 있다.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전문가들도 있고, 평생 일만 하다 이제 ‘예술’에 눈 떠 다른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자 하는 교양인들도 있다. 심지어는 현직 대통령마저 은퇴 후에 ‘사진작가’가 되어 활동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사석에서 피력한 적도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사진작가는 명사들의 동경이라 하겠다. ‘사진작가’라는 직업 아닌 직업이 그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비치는 모양이다.

그들이 ‘사진작가’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이나 관념, ‘작가’ 활동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는 각기 다를 것이다. 리처드 기어처럼 공익적 목적을 위해 사진을 활용하고자 하는 이도 있을 테고, 소박하게 취미생활이나 여가활동을 위해 사진을 찍고자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좀 더 거창한 꿈을 갖고 ‘예술가’로 성공하고 싶은 이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런 편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두 ‘사진작가’에 대한 저마다의 환상을 갖고 있다. ‘사진작가’를 동경하는 그들의 욕망이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인간은 누구나 꿈을 꿀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꿈을 펼쳐나가려 할 때는 신중히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우선 왜 ‘사진작가’를 동경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시인이나 소설가도 있고 화가도 있는데, 왜 굳이 사진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가 말이다. 문인이나 화가는 부르디외식으로 표현하자면 장(場)의 위계가 높아 사진작가보다는 사회적으로 선망의 대상이 된다. 실제로 등단을 하지 않았다 뿐이지 직접 시를 쓰거나 소설을 쓰는 아마추어 문인들도 상당수에 이르며, 전시회를 하지 않아도 본래 재능이 뛰어나 그림을 잘 그려 선망의 대상이 되는 이들도 많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얼마 전 유명 래퍼가 펴낸 소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까지 올라가 일반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적도 있고, 유명 연예인들 중에는 정기적으로 그림 전람회를 개최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어쨌든 글을 잘 쓰거나 그림을 잘 그리기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오랜 훈련이 필요하고 게다가 재능까지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사진을 잘 찍기란 글이나 그림에 비해 한결 수월하다. 물론 시작 단계에서만 그렇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문인이나 화가가 되겠다는 꿈보다는 훨씬 현실적이다.

사진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사진술을 배우기가 쉽지 않았다. 필름을 직접 만들어 써야 했고, 카메라를 다루기도 어려웠으며, 필름에서 사진을 인화해 내는 공정도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는 건판 필름이 등장하고 나서야 촬영자가 직접 필름을 제조해야 하는 번거로움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또한 셔터만 누르면 나머지는 알아서 해준다는 코닥 카메라의 광고 문구는 누구나 사진작가가 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음을 알려주는 신호탄이었다. 실제로 코닥 카메라가 시판되는 1880년대 후반 이후에는 광범위한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사진작가’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후에도 사진의 기술적 진보는 계속되어 이런 경향은 가속화되었다. 디지털 기술의 시대가 도래 하면서 사진의 생산과 소비, 유통은 은염사진의 시대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간편해졌다. 이런 시대를 살면서 한번쯤 ‘사진작가’가 되기를 꿈꾸어보지 않는 것이 도리어 이상할 정도이다. 그런 점에서 명사들의 희망사항 또한 정당한 바람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바람의 귀결점이 어디냐에 있다.

사실 리처드 기어가 찍은 사진이나 그 전시에 작품을 출품해 준 유명 사진가들의 사진 사이에 시각적으로 큰 차이는 없다. ‘결정적 순간’의 신화를 만들어 낸 까르띠에-브레송의 사진을 운 좋게 누구라도 비슷하게 찍어낼 수 있으며, 현대미술 시장에서 고가에 팔리는 사진과 시각적으로 큰 차이가 없는 사진을 이제 막 ‘사진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일반인도 조금만 노력하여 모방하면 만들어낼 수 있다. 저명한 사진 콘테스트에서 입상한 ‘작품’과 무수히 많은 사진 동호회 게시판에 올라오는 사진들 사이에는 기실 큰 차이가 없다. 국내 유명작가가 찍은 사진과 무명의 작가지망생이 찍은 사진이 질적으로 아주 다른 것도 아니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유명한 작품사진을 보고 누구라도 ‘나도 저 정도는 찍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해서 하등 이상할 것 없다. 따라서 ‘나도 사진작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아주 자연스럽다 하겠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예컨대 누구나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다가 서명을 하여 전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 뒤샹이 그랬듯이 말이다. 어쩌면 뒤샹이 레디메이드로 제시한 병 걸이나 자전거바퀴, 소변기보다 훨씬 더 그럴듯한 물건을 뒤샹보다 더 유명한 사람이 전시장에 갖다놓을 수도 있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구겐하임 미술관에 어느 날 갑자기 백화점에서 구입한 물건을 갖다놓고 레디메이드 작업을 했다고 우긴다면 각종 언론에서 가만히 있겠는가 말이다. 그 경우 그들은 예술가인가? 물론 그들이 예술가가 아니라고 고집할 근거는 없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그들이 예술가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 또한 없다. 이럴 경우 단토라면 그들이 미술관에 갖다놓은 물건이 예술의 장(場) 속에서 무언가를 발언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들의 행위가 바로 그 장 속에서 의미를 부여받는다면 가치 있는 예술작품이라고 말할 것이다. 추정컨대 이 유명 인사들의 행위는 일거수일투족 언론의 주목을 끄는 까닭에 그들이 제시한 레디메이드 작업은 예술계에서조차도 비상한 관심을 보일 것임이 분명하다. 여기에서는 당연히 미술관이라는 예술제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미술관에서 그들의 작업을 수용했다면 이미 그들은 공인된 예술가라 할 수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질 리는 없겠지만, 비슷한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명사(名士)들의 사회활동은 주목받게 마련이다. 그들의 일상이 관심거리인데 전시회를 열거나 작품집을 출간하면 오죽하겠는가. 한 마디로 ‘뉴스거리’가 된다. 십 수 년씩 작가활동을 해도 언론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작가가 부지기수인데, ‘데뷔전’이 ‘뉴스’가 된다면 이는 불공평한 것이다. 물론 언론만 탓할 바는 아니다. 어쩌면 언론의 이런 반응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그것이 언론의 속성이니까. 대중들의 반응 또한 나무랄 것만은 아니다. 그것이 대중의 속성이므로. 오히려 문제는 명사들의 사진 활동에 대한 전문가 집단의 과민반응이다. 언론이 그리하는 것은 뉴스가치 때문이라고 이해하면 그 뿐이지만 전문가 집단이 부화뇌동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사진갤러리나, 전문 잡지, 작가, 평론가 등 사진문화를 가꾸어 나가는 이들이 냉정한 평가를 내릴 필요가 있다.

누구나 알아보는 명사가 아니더라도 사회 각 분야 유력인사들의 사진 활동 역시 눈길을 끌기는 마찬가지이다. 재력이 있거나 언론, 출판계에 영향력 있는 유력 인사들이 사진전을 열거나 작품집을 출간하면 상대적으로 주목받을 여지가 크다. 그리고 그렇게 전시를 몇 번 하고 나면 ‘사진작가’ 대접을 받는다. 이는 일반 사진애호가들 사이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취미, 여가 활동으로 시작했다가 연수가 쌓이고, 자신감이 붙고, 주변에서 칭찬도 받고, 간혹 공모전에 당선이라도 되면 그 때부터 ‘사진작가’로 통하는 것이다. ‘사진작가’라는 수식어가 그리 명예로운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호칭을 원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지적해야 할 점은 사진애호가, 즉 아마추어 작가들이 사진에 대해 취하는 태도이다. 문화 민주주의라는 이념이 일종의 공리(公利)처럼 인식되는 한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사진작가’가 될 수 있는 권리를 누구나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사진애호가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버리고 사진 작업에만 헌신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대개는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즉 그들은 ‘사진작가’라는 지위가 덤으로 따라올 때만 수용하려 한다. 물질적 안락함을 포기하면서까지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작업에만 몰두하는 작가들에게도 물질적 풍요에 대한 세속적인 욕망이 당연히 있다. 그들 역시 때로는 ‘작가’로서의 궁핍한 삶을 버리고 안정된 노동의 세계 속으로 편입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자기 직업을 버리면서까지 ‘사진작가’가 되기를 원치 않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처럼 그들 역시 ‘작가’이기를 그만두고 ‘직업인’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사진문화가 진행되어 온 역사를 보면 각 시기마다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역할이 있었다. 그들은 단지 향유의 권리만을 앞세웠던 단순한 문화 소비자가 아니라 진정으로 그 문화를 아끼고 이해했던 적극적인 문화 생산자이기도 했다. 사진술이 한국에 도입된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아마추어 사진가들은 한편으로는 방대한 문화 소비자층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사진언어의 생산자로서 이중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예를 들면 1920-30년대의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있다. 한국의 초창기 사진문화는 사진관에서 영업활동을 하던 사진사들이 주도해 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 시기의 직업사진사들은 사진을 주로 도구적으로 이용한 측면이 있다. 이런 관행과 결별하고 이른바 ‘예술사진’을 추구해 나갔던 이들 중에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고, 그들의 예술적 성취도는 매우 높았다.

등단이라는 제도가 없는 한국 사진문화의 관행에서 ‘사진작가’로 인정받는 길은 매우 제한되어 있었다. 일제강점기부터 존속해 왔던 공모전에서 입상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자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사진작가’라는 모호한 명칭 또한 국내 최대 규모의 공모전을 주최하는 <한국사진작가협회>에서 나왔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오늘날 이 제도는 점차 실효성을 상실해가고 있다. 공모전의 권위는 계속해서 실추되어가고 있으며, 작가협회 회원 수는 감소추세에 있다. 공모전 입상 또한 사진가로 활동하기에 내세울만한 스펙이 되지 못한다. 사진작가협회 주최의 공모전 외에도 수많은 다른 공모전이 있지만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현실에서 ‘사진작가’를 동경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인가?

그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사진작가상(像)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사회적으로 널리 인정받으면서 고상해 보이는 예술가상을 그리거나, 품격을 지키면서 작품도 잘 판매하는 유명 예술가상을 떠올릴 것이다. 전시회장에서 박수갈채도 받고, 대중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성공한 작가상, 그것이 모두가 원하는 바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채 궁핍을 감내하며 묵묵히 자기 세계를 완성해 나가는 작가들이 태반이다. 그들은 오직 자기 자신과 싸우면서 때로는 인류와, 때로는 세계와, 때로는 문명 전체와 한바탕 도박을 벌이고 있다. 그들의 노동에 어떤 보상이 따라올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들 역시 세속적으로 성공한 작가상을 그리고 있을 테지만 초초함을 지워버릴 만큼 ‘사진작가’라는 지위가 탄탄한 것은 아니다. ‘사진작가’를 동경하는 이들의 머릿속에 이런 작가상이 있는지 궁금하다. 결국 그들은 장밋빛 미래보다 어두운 현실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이는 현실적인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먼저 윤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황해문화 2011 가을호)

Posted by paixaube